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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감독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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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anta100 작성일 2017-03-27 11:26 댓글 0건 조회 1,7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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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 : 김현석
  • 등록명 : 김현석2
  • 출생일 : 1967년 5월 5일
  • 신체 : 178cm / 70kg
  • 지도자 : 축구부 감독
  • 별명 : 미스터 울산ㆍ가물치ㆍ미스터 현대
  • 국가대표 경력
1994년 FIFA 미국 월드컵 아시아예선 대표
1996년 AFC 아시안컵 예선 대표
1990년 ~ 1996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A매치 22경기 출장 / 5골)
  • K리그 수상 기록
대회명 수상 기록
K리그 우승 1회 (1996)
대한민국 FA컵 준우승 1회 (1998)
K리그 시즌 베스트 11 1991, 1992, 1995, 1996, 1997, 1998
K리그 시즌 MVP 1996
K리그 득점왕 1997
K리그 컵대회 득점왕 1995, 1998
  • 특기 사항
기록 비고
K리그 50-50 클럽 가입자K리그 역사상 1호 50-50
K리그 역대 단일 클럽 득점순위 2위 국내 선수 중에는 1위
K리그 역대 통산 득점순위 6위 국내 선수 중에는 5위
K리그 역대 통산 도움순위 9위 국내 선수 중에는 7위
  • K리그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교체 득점 도움 경고 퇴장
1990 현대 호랑이 현대 호랑이 28 1 53 3 0
1991 39 10 144 2 0
1992 37 12 137 2 0
1993 11 8 11 0 0
1995 33 2 187 5 0
1996 울산 현대 호랑이 울산 현대 호랑이34 5 99 4 0
1997 30 2 135 5 0
1998 37 8 175 6 0
1999 36 3 86 2 0
2001 31 9 65 3 1
2002 35 3 62 5 0
2003 20 8 00 3 0
통산 K리그 371 71 11054 40 1
K리그 통산 기록은 리그컵 기록 포함. 2010년 3월 1일 기준.
연맹 공식 DB / 네이버 선수정보 DB

유소년 시절[편집]

강원도 삼척 출신으로 삼척초, 강릉중, 강릉농고[1]를 거쳐 서울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선수이다. 삼척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공을 차기 시작하여 강릉중학교로 진학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고 한다.[2] 김현석을 앞세운 강릉중학교가 각급 대회에서 선전하자, 김선수를 데려오기 위한 스카우트 경쟁이 벌어졌고 최종적으로 김선수는 강릉농고에 진학하기에 이른다.

이후 강릉농고 소속으로 농상전에서 활약하던 김선수를 지켜본 연세대학교 축구부 스카우터가, 그를 연세대로 데려가면서 김선수는 본격적으로 메이져무대로 치고 올라오기 시작한다. 연세대에 입학한 김선수는 연고전에서 2골을 터뜨리면서 연세대의 영웅이 되기도 하였고, 1987년에는 전국축구선수권 무대에서 연세대를 결승전까지 끌고가는 활약을 보이며 국가대표팀 2진에 이름을 올리기까지 하였다. 1989년에는 연세대 주장완장을 차고 팀을 제37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정상에 올려놓으며 명실상부한 연세대 최고의 에이스로 대학생활을 마치고 프로 무대에 도전하게 되었다.


프로 선수 생활[편집]

1990년 현대 호랑이를 통해 K리그 무대에 데뷔하였다. 1990년대 내내 현대 호랑이 및 울산 현대의 주포로 활약한 김선수는 1996년 팀의 창단 첫 우승을 견인하며, 커리어에 정점을 찍었다. 이후 2000년 일본 J리그베르디 가와사키로 이적하였으며,[3] 2000시즌 베르디에서 17골을 넣는 대활약을 펼쳤보였다. 그러나 김현석이 빠진 울산은 2000년 K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말았고, 김선수는 베르디의 2년 재계약 의사도 거절하고 2001년 다시 울산 현대로 복귀하였다. 이 때 울산 복귀 인터뷰에서 "울산에 뼈를 묻겠다"라는 발언을 하면서 울산팬들을 눈물짓게 하였다. 그 후 2001시즌 PK골을 통해 K리그 통산 100호골을 기록하였고, 2003년 은퇴할 때까지 K리그 통산 110골을 넣었다. 이후 2003년 8월 K리그 올스타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은퇴 후 코치로 일하던 김현석은 2004년 5월 29일 축구 유학을 위해 독일로 떠났다. 유학 후 울산 현대로 돌아온 김현석은 2012년 현재 울산 현대의 수석코치직을 수행하고 있다.


은퇴 이후[편집]

2003년을 끝으로 선수 은퇴 이후, 2004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베르더 브레멘으로 약 1년 6개월간 지도자 연수를 떠났던바 있다. 유학에서 돌아온 후에는 2006년부터 울산 현대의 코치직을 2012년까지 수행하였다. 언젠가는 울산 현대의 감독으로 부임하는 날이 올 것이라 울산팬들도 더러 기대했는데.. 2013시즌에는 울산 코치진 명단에서 김현석 씨의 이름이 빠져 팬들에게 의아심을 자아내게 했다. 이후 2013년 8월, 전국여자축구선수권을 앞두고 창단된 울산 WFC[4]의 창단 감독으로 김현석 씨가 부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며, 이어 2014년 1월에는 김씨의 모교이기도 한 강릉중앙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학원 축구계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플레이스타일[편집]

문전 혼전 상황에서의 파괴력이나 볼에 대한 집착도 매우 뛰어났고, 여기에 당대 K리그에서 테크니션으로 최문식과 나란히 이름을 올릴만큼 기술적인 능력까지 겸부한 90년대 K리그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다. 다만 불같은 성미으로 인한 폭력 시비, 팔꿈치를 이용해 상대 수비수를 압도하는(?)[5] 모습을 더러 노출한 탓에 상대적으로 평가가 깍이는 선수 중 한명. 특히 리그에서의 씹어먹을듯한 활약도에 비해 국가대표에서는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국내용이란 오명을 들은 것도 이런 평가절하의 요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팬들을 비롯한 올드 K리그 팬들에게 김현석이 갖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지도자 스타일[편집]

에피소드[편집]

  • 이런 김현석에게 Fu.. 을 날린 용자가 있었으니 바로 대전 서포터. 다행히(?) 김현석 선수가 은퇴를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간듯. 선수 시절 같았으면 한국의 에릭 칸토나가 되셨을지도.. 아니 칸토나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일단 이빨은 날아갔겠지 대전 서포터도 그냥 이유없이 김현석에게 폭유를 날린건 아니었고, 김대수 vs 유상철 + 김현석 충돌사건 때문에 김현석과 대전팬간의 사이가 상당히 좋질않았던데 기인하는바가 크다.
  • 2012시즌, 울산이 강원으로 원정을 갔을 당시, 김현석은 이례적으로 강원 서포터 석으로 인사하러 찾아갔었고, 지역 출신 인물에 대해 애착이 강한 강원 분들은 그를 반갑게 맞이하였던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학범 당시 강원 감독이 김현석을 강원의 수석 코치로 데려갈 것이라는 설까지 돌았었다.


경력[편집]

  • 1993.6 ~ 1994 : 상무 / 실업축구 (군복무)
  • 2000 : 베르디 가와사키 / J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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