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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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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50 작성일 2022-01-27 10:09 댓글 0건 조회 46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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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과 행복

 

 

행복의 반대어가 불행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반대어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그게 우리의 생활에 어떻게 써먹는지는 몰랐지만 가르쳐 주니까 그냥 수용했다고 본다.

그때 배운 대상 중 하나가 행복과 불행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행복과 불행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 것인가?

불행은 무엇이며 행복은 또 무엇인가.

이 글을 쓰면서 머릿속에 번개처럼 떠오르는 사례가 하나 있다.

 

불과 삼사십 년 전만 하여도 집안에 남자아이가 태어나야 한다고 철석처럼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를 대 여섯 명 이상 낳아도 남아가 없으면 대접을 받지 못하던 세상이 최근까지 있었었다.

조선시대에 칠거지악이라는 요상한 사고방식 중에 아이를 못 낳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서 아이라는 것은 남자아이를 칭하리라 본다.

 

근대사 전까지만 하여도 남자아이를 가지지 못한 집안은 대가 끊긴다면서 불행한 집안으로

낙점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세월이 변하면서 이런 전통도 사라져가고 있다.

지금 세상에 남자아이를 가지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같은 남자아이지만 어느 시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불행한 시대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시대도 있다는 것이다.

행 불행은 시대에 따라서 또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행 불행을 갈라놓는 불변의 현상은 있다고 본다.

석가모니가 설파했던 생로병사는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겪어야 하는 고통인 것이다.

이렇게 숙명적으로 다가오는 현상을 불행으로 볼 것인가 그렇지 않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어차피 태어난 인생의 씨앗이라면 생로병사에서 좀 더 자유스러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도

 불행을 희석시키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태어나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고, 늙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아픈 것은 의사들의

밥자리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으로, 죽음은 후세를 위한 보시라 생각하면 좀 덜 괴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행복과 불행은 항상 같이 오게 돼 있다고 본다.

새옹지마, 흥진비래, 고진감래 같은 것은 행과 불행이 인간 세상에서 항상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본다.

 

지난주에 돌 나르는 작업을 하다가 오른쪽 중지 손톱 아래를 찌었다.

면장갑을 끼고 일을 하고 있었는데 찢기는 순간에는 통증을 느꼈지만, 그 일에 얼마나 몰두했는지

그렇거니 하고 넘어갔다.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싶었는데 아까 찢은 손가락이 궁금하여 작업용 면장갑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장갑의 바닥이 빨개야 하는데 중지 끝부분이 전체가 빨개져 있는 것이 아닌가.

얼른 장갑을 벗어 보았더니 찢어진 부분을 자꾸 움직이다 보니 피가 멎지 않고 계속 나왔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일주일 내내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고 살았다.

겨울철인데다가 찌어진 부분이 관절이 있는 부분이라 손가락 끝을 무의식중에 구부리면 아물던

 상처가 찢어지면서 통증이 오는 것이다.

혹시 잠자다가도 주먹이라도 쥘라치면 상처가 찢어지면서 피가 나고 통증이 오는 것이다.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1주일 좀 더 넘기면서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엊그제 밴드를 풀고 맨손으로 세수를 할 수 있었다.

양손으로 세수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행복은 지극히 상대적이라 본다.

불행의 추억 없이 진한 행복을 맛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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