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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誠과 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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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50 작성일 2023-11-24 08:17 댓글 0건 조회 17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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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精誠과 건성

 

 

대비가 되었을 때 비교하기 쉬워지는 게 우리네 인지 구조인 것 같다.

비교를 한다는 것 자체가 썩 달갑지는 않은 현상이만 많은 인구가 살아가는데 그런

 현상을 간과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비교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영역이 통계가 아닌가 싶다.

이를 통하여 정치, 경제, 사회를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게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연구논문 같은 경우에 비교를 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은연중에 비교의 틀에 갇혀서 살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단 그런 현상을 우리는 일일이 들여다보고 있지 않을 뿐이라 본다.

우리는 일이라는 것을 하면서 살아간다.

어떤 자는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하여, 또 어떤 자는 떼돈을 벌기 위하여, 또 어떤 

자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기 위하여 일에 매 달린다.

그런 일을 하면서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 과정이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데 대충대충 한다는 핀잔을 받을 때가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 이런 현상이 발생되겠는가.

남이 어떤 일을 시켰을 경우, 별 영양가가 없는 일이라 생각했을 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때, 체질에 별로 맞지 않는 일을 할 때, 몸이나 마음이 아플 때 

일 할 경우,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할 경우, 다음에 해도 될 일을 미리 당겨서 하는

 경우, 타인의 하수인으로서 일 하는 경우, 반복적인 일이 일어날 경우, 너무나 

잘 한다면서 오만을 떨 때에 이런 현상이 발생되게 돼 있다.

이렇게 대충대충 일을 해 보면 일 하는 것도 재미가 없을뿐더러 그 결과도 신통치

 않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은 고사하고 자칫 잘못하다보면 안전사고가 날 개연성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호랑이가 하찮은 토끼 한 마리를 잡는데도 대충대충 접근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내 맘에 안 든다고 대충 처리하다보면 건성의 길로 가게 돼 

있는 법이다.

 

대충대충 일을 하다보면 그 자체가 자신의 체질에 배게 되는 경우도 발생된다.

몸이나 마음이나 같은 일을 계속하다보면 몸에 배고 그것이 곧 자신의 습관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보면 별의 별 사고방식을 다 관찰할 수 있다.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집단인 관계로 그들의 성향이나 습성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서도 벌써 건성으로 무장된 아이들이 종종 보이게 된다.

이런 사고방식이 점점 쌓여 가면 인생 자체도 그런 방향으로 갈 확률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대충대충 살아도 잘만 살 수 있다면 모를까, 세상의 눈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는 게 정설이 아닐까 싶다.

 

반변에 모든 일에 정성껏 접근하는 사람도 있다.

남의 일도 내 일처럼 다다 붙어서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물론 돌쇠나 마당쇠처럼 시키면 시키는 대로 우직하게 하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고자 하는 사고방식은 평가를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해야지만 자신이 하는 일을 야물딱지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인가.

일의 조건에 따라 집중도와 정성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돈벌이가 기가 차게 잘 되는 일을 할 때, 내가 추구하는 이상의 직책이나 자리에 

앉았을 때, 남이 부러워하는 일을 할 때, 자신이 이상을 실현하는 일을 할 때

진심어린 봉사활동, 나의 존재가치가 높아지는 일, 나로 인하여 주변사람의 경제

생활이 걸려 있을 때, 예체능에서 높은 경지의 경기나 작품을 만드는 순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할 때, 명예를 드높이는 일을 할 경우에는 정성을 기우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살아가는데 일을 초월해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크게 보면 먹고 노는 것도 일종에 일이라 본다.

저승 가는 날이 일이 끝나는 날이라 보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결국 죽는 것도 하나의 큰일인 셈이다.

이렇게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일에 파 묻혀 사는 것을 인생사라 하는 것이다.

이 인생사를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임할 것인가가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인 것이다.

 

정성껏 살아가던 건성을 살아가던 간에 선택은 우리 스스로에 있는 것이다.

오로지 정성으로만 살아간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타인이 보았을 때엔 대단한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본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기조를 지킨다는 것 자체가 용이한 일은 아니라 본다.

건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항변할 말은 있을 것이다.

주어진 일이 죄다 허접한 일만 차례가 오는데 당신이라면 온갖 정성을 기우려 일 

할 수 있겠냐고 반문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건성과 정성 중에 어디에다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세월이 흐른 뒤 결과는 

달라지리라 본다.

건성을 추구한 자는 건성의 인생이 엮어질 것이고 정성을 추구한 자는 정성의 

인생이 엮어지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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