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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기 어머나! 저기 좀 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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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량마눌 작성일 2007-02-12 14:22 댓글 0건 조회 9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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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저기 좀 봐.”
2월 11일 일요일 한 낮에 시흥의 소래 산을 산행하던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야~ 응~ 응~”
크게 소리 내지 못하고 옆 사람의 옆구리를 찌르며
연실 그곳을 보라고 몸짓을 하는 등산객들도 있었다.

아래를 쳐다 보다 다시 위를 쳐다보더니
웃음을 참지 못해 코를 벌름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아저씨! 참지 말고 그냥 웃으세요.”
“산에 오시는 것 또한 좋은 것인데 웃음은 왜 참으십니까?”
보다 못한 내가 오히려 웃으며 한 마디를 건네었다.

이 모든 해프닝이
바로 나의 외모를 보고 놀란 사람들이었다.

물론 외모가 출중하면 웃음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고
그럼 나의 외모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하시지요?

“자~ 그럼 들어갑니다.”

주말만 되면 무슨 중독에 걸린 사람들처럼
함께 하지 못하면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

허리가 삐끗하는 바람에 산행은 꿈도 꾸지 못했던 난
결국 찜질 방을 생각해냈다.

“찜질이나 같이 합시다.”

어차피 매일 만나는 사람…….
늘 함께 하고픈 사람.......
밥 먹는 것보다 웃음을 머금고 싶은 사람들에겐
장소 따윈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다.

입고 만나면 어떠랴.
혹은 벗고 만나면 어떠랴.
부부가 늘 함께 하는 주말이다 보니 이젠 한 식구 같은 생각이 든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우리 부부는 주말에 친구 부부들과 함께 한다는 설렘으로 1박 2일 여행길을 서둘렀다.
매주 만나도 반가운 사람들이기에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설렘이다.

찜질 방에서의 하룻밤을 (길어서 생략) 보내고
아침은 부지런한 종만씨 마늘님에게 얻어먹었다.
사골 곰국을 끓였다나.......
신랑한테 줄 사골 곰국을 친구 부부에게 나누어 주는 내외의 모습은
그저 싱글벙글 이었다.

받기 보단 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
이것이 모임의 수명을 연장해나가는 진실한 마음이다.

밥을 먹는 중에
다른 팀들이 우르르 도착했다.

“밥 먹었어?”
“곰국이니 한 그릇 먹어 둬.”
“고벵이에 좋다네.”
밥을 먹었다는 친구 내외들에게 주인장은 아낌없이 퍼 나른다.

“오늘 산행할거야?”
노랑저고리님 내외와 시 의원님 내외의 질문이었다.
오이와 김밥 그리고 커피까지 준비했다면서…….

다 준비 됐다고 하는데 나 때문에 못가면 무지 섭섭해 할 것 같아
무리한 산행에 겁 없이 길을 따라 나섰다.

장소는 시흥 소래 산이었다.
왜서 그 곳을 선택했느냐?
요즈음 종규씨 집안에 좋은 일이 겹쳐 두 내외를 못 본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종규 씨가 거주하고 있는 시흥을 선택한 것이다.

“여보세요. 우리 지금 당신네 집으로 가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갑자기 많은 인원이 종규씨 집으로 향하고 있다는 말에
백조는(마눌) 독특한 인사를 잊지 않았다.

“미쳤어. 미쳤어. 정말. ㅎㅎㅎ”

집이 아닌 종규 씨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두 내외가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건물 벽을 예쁘게 색칠하고 있었다.

“이리 줘 봐.”
서로 한 번씩 칠해 보겠다고 설치는 친구들에게 붓을 빼앗긴
종규 씨는 여유의 웃음을 지었고
남편 친구들이 페인트 칠 해주겠다는 고마움의 답례로
웃음을 잃지 않는 센스 때문에 결국 백조는 벽이 아닌
남정네들의 옷에 페인트칠을 하고 말았다.

“어떻게. 어떻게.”
어쩔 줄 몰라 하며 웃는 동안 작업은 쉽게 끝이 났다.

“당신 어떻게. 허리 다쳤다고 하더니 산에 갈 수 있나?”
백조는 걱정의 질문을 나에게 던져 왔다.

“산 입구에만 가지. 뭘.”
자신 없는 나의 대답에 모두들 걱정하면서도 그저 좋아서 박수 치며 차에 올랐다.

급히 집에 들러 준비해 온 배려의 손길이 느껴졌다.
미쳐 준비를 해 오지 못한 신발을 백조가 챙겨 온 것이다.

“이 신발 230m 인데 이거 맞나?”
“내 발이 235m 인데 어떻게 맞나?”
“당신은 발만 크나?”
“내가 정상이지. 어디 내 발이 크나?”
만나면 남정네들 보다 강원도 사투리를 더욱 써 가며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미래의 건강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발길로 소래 산은 발 딛을 틈이 없었다.
입구에서부터 주차와의 전쟁을 치루며 각자의 배낭을 챙기면서
벌써 우리의 주위는 시끌벅적했다.

날씨가 찬 바람이 불면서 아래가 싸늘해짐이 전해 왔다.

“어휴 추워.”
찬 바람이 불어 잔뜩 움츠린 내 모습에 모두 바지를 벗어 주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으나
어디 바지 두 개를 껴입고 온 사람이 있었겠는가.

창식 씨가 점퍼를 벗어 주며 바지 위에 두르라고 하는데
마침 창식씨 차 안에서 지난 번 신년회 행사 때 입고 재롱들을 떨었었던 소품을 발견했다.

그 것은 바로 고쟁이
소품을 꺼내 들자마자 웃음보가 터지기 시작했지만
난 살이 에일 것 같은 추위에 외모를 따질 수 없었다.

하여 바지 겉에 용감하게 고쟁이를 껴입은 것이었다.
춥다고 하는 사람이 더 있어 함께 세트로 입기까지 하였다.

빨간 꽃무늬에 전형적인 할머니 패션에 허리를 잡고 걷는 폼까지
누가 봐도 웃음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지만
나의 선택은 용감한 것이 아닌 현명한 선택이었을 뿐이었다.

‘허리 아픈데 감기까지 걸리면 누가 대신 아파해 주는가?’
오랜 아픔 끝에 찾아 온 현명한 생각이 늘 내 마음 속에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렇다. 난 누가 뭐라 해도 난 나의 건강을 위해 노력 할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
난 늘 웃음을 쫓아다닌다.
그리고 이웃이 아프지 말라고 늘 웃음을 자아내는 푼수 역할을 자청하기도 한다.

소래 산에서 만난 무수한 사람들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 해 대고 웃었지만
그럴수록 난 갖은 폼을 만들어 가며 웃음을 자아냈다.

웃기며 …….
더불어 웃으며 길을 걷는 동안
난 초입까지만 동행하리라는 그 마음이 어느 새
산 정상에 까지 도착하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그 기적의 힘은 바로 영원한 동반자들이 함께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를 모르는 등산객들은 일개 웃음의 대상이었을지는 몰라도
나와 함께 같이 걷는 우리 일행들은
눈물과 아픔, 웃음, 그리고 세심한 보살핌까지 서로가 함께 하는
영원한 동반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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