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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기 [re] 중국의 10대 원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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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李 相卿 작성일 2007-04-19 10:19 댓글 0건 조회 88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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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10대 원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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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10대 원수 중, 또하나 우리에게 각별히 기억되는 인물은 임표(林彪 : 린바요)라고 생각한다.
특히 임표는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모택동(毛澤東 : 마오저둥)이 한국전쟁 때에 중국군을 파병 할 것인지를 논의하기 위하여 회의를 소집하였을 때, 이를 가장 강력히 반대했던 인물이 바로 임표였기 때문이다. 그는 반대의 이유로는,
① 이제 막 해방되었고, 중국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수백평방키로 미터의 땅을 위하여 손을 내밀 필요가 없다.
② 아직 우리는 미국의 적수가 안된다. 우리 중국은 현대화된 미군과 전쟁을 할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다.
③ 한국전쟁은 스탈린이 배후에서 김일성을 교사한 결과로 의심된다. 라고 주창했던 것이다.

▶ 어떻든 중국혁명의 공신으로 모택동의 가장 친밀한 전우이자 후계자로 꼽혔던 임표는 문화혁명 과정에서 장칭(江靑 :모택동의 부인) 등 4인방과 대립하다 정권탈취 기도가 발각되자 1971년 9월 그의 부인, 아들과 함께 국외로 탈출하려다가 몽골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사망한 것을 기억하고 있기에...

▶ 그런데 오늘날 중국의 문혁 발발 40주년을 맞으면서 역사의 아이러니컬 함을 다시금 느끼는 것은 문화혁명을 주도했던 인물들의 엇깔린 운명이다.
즉 모택동과 장칭(江靑) 사이에서 태어난 리너(李訥.66)는 문화혁명 당시에 크게 이름을 떨쳤으나, 그녀는 오늘날 신장병 등의 병환으로 인하여 극빈생활을 하고 있는 반면, 임표의 딸 린리헝 그녀는 그의 아버지 임표의 사건으로 인하여 대의멸친(大義滅親 : 대의를 위해 가족간의 정도 끊음)'하여 공산당의 재천거를 받은 이후, 현재 베이징 싱푸(幸福)에 있는 황허(黃鶴)호텔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월 2천만위안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거부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대재앙을 초래한 문화혁명이 극좌편향의 오류였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마오(모택동)는 중국에서 여전히 신중국 건설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반면, 린뱌오(임표)는 배신자로 낙인찍힌 채 재평가나 복권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으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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