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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기 연평도 포격 사건때의 일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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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뉴스에 연평도~~
해병대 사령부는 23일 오전 11시에 대전 현충원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합동 묘역에 연평도 포격 도발 6주기 행사를 거행 한다고 하였다.
엊그제 같은데 우리집 1남 4녀중 막내가 해병대에 입대하여 11월 22일 제9여단에서 무사히 제대를 하였다.
애비가 제대 말년에 ? 군단 포사령부에서 근무했던지라 아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연평도 포격 사건때의 일 ....정리하여 올려본다.....
원래 포병은 포대 단위로 운영되는 부대다.
즉 사격의 지휘 통제가 포대 단위로 한다는건데 .....
연펑도의 경우 접적지역임에도 달랑 일개 포대 6문이 방열되여 있다.
포병이란게 적어도 3~4개월에 한번씩은 진지 점령 훈련과 실탄사격훈련을 해 보아야 한다. 그러자면 휴전선은 단 한시간도 비워 둘수 없으니 훈련시 다른 포대가 와서 그곳을 지켜줘야 한다.
그래야 이동도 하고 사격도 하며 실탄사격을 하면 필히 포의 정비가 필요해서 정비도 하고 해야한다.
허나
연평도 포병은 대체 포병이 없어 2문씩 교대로 나가 사격훈련을 한 모양이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도 산다는 아주 구차한 입장으로 훈련을 한다.
두번째 포 두문이 사격을 마치고 귀대하여 정비도 하기전에 불시에 북한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원래 포병이 포병공격을 받으면 타 부서의 레이더나 공군, 아니면 관측소로부터 정보를 받아 대응사격을 하는게 원칙이지만 당시에 아무도 그것을 해 주는 부서가 없었다.
해서 포대장의 판단아래 평소에 주어진 타킷에다가 주위에 떨어진 포탄(대략 40발)의 배인 80발을 대응 사격을 했다.
포병은 그 구조상 병사 몇명이 용감하다고 해서 전투를 할수있는 부대가 아니고 중대 전체가 중대장이나 사격지휘장교의 지휘하에 전투를 할수있는 부대다.
해서 이동중인 포병이 불시에 공격을 받고 상급부대로부터 어떤 지휘나 발사지점의 정보가 없으니 포대장은 자기 부대 주위에 떨어진 포탄의수 (대략 40발)의 배(80발)를 평소에 주어진 목표를 향해 13분만에 대응 사격을 했다.
참으로 용감하고 애국적으로 임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헌데 웬걸, 초기 언론들이 일제이 해병대 포병을 질타하고 비난한다.
"늘어 터져 빠지게 대응사격을 하는데 13분이나 걸렸다. 저런 포병을 뭣에다 쓰나."
분활 사격중이라 지휘체계가 살아 있지 않았다.
"발사지점이 아닌 엉뚱한 곳에다 사격을 한다."
발사 지점을 알려주는 곳이 없었다. 포대 자체로는 발사지점을 신속히 파악하는게 불가하다. 공군이나 레이더 부대가 알려줘야 한다.
해서 평소의 임무로 받은 화집점(적군의 급소)에다 무조건 사격을 했다.
"수백발을 맞고 겨우 80발을 쐈다."
연평도 시가지에 떨어진건 몇발인지 알수없고(알려주는 부서가 없어서) 포대 주위엔 40발 정도가 떨어졌고 공격받은 포탄의 2배만를 사격해야 하고 그 이상을 발포하면 전쟁 도발자로 추궁받는다.
"휴전선을 지키는 막중한 임무의 포가 고장이 나서 일문은 처음 사격에서 배제되였다."
정비할 시간이 없었다.
허나 전투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주한미군 사령관이
"훈련중 포병이 공격받고 13분만의 대응사격을 한것은 참으로 놀랍다."
라고 한마디 하고 나니 그때서야
"죽음을 무릅쓴 용감한 해병의 대응사격아라니, 외출 나가다가 부대로 돌아와 사격을 했다라니, 철모에 불이 붙은줄도 모르고 응사 했다"니 하며 호들갑은 떨었지만
그땐 이미 연평도 해병 포병 7중대원들은 이미 상당한 가슴의 상처를 받은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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