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별마당

기별게시판

34기 장강크루즈 여행기2-2 ; 석보채(石寶寨)

페이지 정보

작성자 RGO 작성일 2016-11-10 10:52 댓글 0건 조회 1,244회

본문


[사진 설명]

<사진 ; 상>

석보채탑은 세계 팔대 기이건물로 꼽히는 건물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석보채는 단 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은, 옛 모습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목탑으로 하단 9층과 그 위에 증축된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 어울리는 듯 조화로운 오묘한 매력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진 ; 중>
 

이 누각은 청나라 가경(嘉慶)제 시절 지어진 것으로 하단부터 상단 탑까지 
지금까지 원형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사진 ;하>

건물 앞쪽에는 압자동(鴨子洞)이라는 육각형의 구멍이 한 곳 있으며,

건물 뒤편 안에는 유미동(流米洞)이라는 구멍이 있다.

유미동은 쌀이 흐르는 구멍이라는 뜻으로 전설이 하나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부터 사원 뒤편의 구멍에서 쌀이 샘솟기 시작했다.

비록 적은 양이지만 스님들에게는 부족함이 없는 양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부터 욕심이 생긴 큰 스님은 구멍이 커지면 나오는
쌀의 양도
많아 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린 스님으로 하여금 구멍을 더 크게 파도록 하였는데,

구멍에 손을 대자 비록 조금씩이라도 나오던 쌀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 오고 있다.




장강크루즈 여행기2-2 ; 석보채(石寶寨)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둘째날 = 2 - 2

 

▶'세계 8대 불가사의한 건축물'로 꼽히는 석보채(石寶寨)

풍도를 지나면 장강삼협의 진주라 불리는 석보채(石寶寨·스바오자이)가 나온다.
석보채는 중저우(忠州)와 완저우(万州)사이,
즉,중경(重慶)시 충현(忠縣) 석보진(石寶津) 장강변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작은 바위산에 있는 누각이다.

 

석보채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현수교(懸垂橋)가 서있다.
178m 상공에 떠있는 출렁 다리 위에 서면 저절로 손에 땀방울이 맺힌다.
밑에는 장강물이 일렁거리며 소용돌이치면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태초에 복희(伏羲), 여와(女媧)와 함께 인류의 시조로 여겨지는 전설 속의
여신이 하늘의 갈라진 틈새를 메우고 남은 ‘오색의 돌’이라 하여
‘석보(石寶)’라 불렸다고 한다.

 

명나라 말(末)부터 청나라 초기까지 농민봉기의 요새(要塞)로 사용되면서
‘석보채(石寶寨 – 채(寨)는 요새를 의미)’ 라는 이름을 얻었다.
석보채는 훗날 삼국지 영웅들의 조각상이 모셔지고 숱한 삼국지 고사와
연관이 되면서 한층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을 계단을 따라 2층에 올라서자
감녕(甘寧), 엄안(嚴顔) 등의 초상화가 우리를 보고 왜 이렇게 늦게
찾아 왔느냐고 하면서 반갑게 맞이 하고 있었다.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감녕과 엄안은 이곳 중현이 배출한 삼국지 이야기의 영웅으로서 충현 사람들은
충절의 상징인 관우와 더불어 감녕, 엄안을 매우 자랑스러워 한다. 


석보채(石寶寨)는 명나라 때 높이 55m의 12층 목탑에 못 하나 쓰지 않고
절벽에 세워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안개 낀 날씨까지 더해져 더욱 신비롭기만 하다. 
명나라 때 순수목재만 사용하여 건축, 청나라 때 수차례에 걸쳐 보수한
것이지만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자랑이다.

 

탑루는 원래 9충천의 의미에 따라 9층으로 건설됐으나 이후 3층을 더 건축해
지금의 12층이 되어있다. 맨 꼭대기로 통하는 좁은 계단을 통해 정상에 오르면
장강의 빼어난 경치를 감상해 볼 수 있다.

 

저 아래 요동치며 흐르는 장강의 물보라가 마치 전쟁이 빗발치던 3국시대의
혼란과 어지러움을 상징하고 어디선가 두보(杜甫)의 시‘등고(登高)’를
읊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두보(杜甫)의 시 ‘등고(登高)’

 

풍급천고원소애 (風急天高猿嘯哀)

가을바람 소슬하게 불며 하늘은 높은데, 원숭이 울음소리는 처량하게 들리고

저청사백조비회 (渚淸沙白鳥飛回)

맑은물가 새하얀모래에 새들이 날아서 돌아오네

무변낙목소소하 (無邊落木蕭蕭下)

아득히 먼곳의 나뭇잎은 가을 바람소리 따라 쓸쓸이 떨어지고

불진장강곤곤래 (不盡長江滾滾來)

끝없는 장강엔 강물이 넘실넘실 흐르고 있네

간난고한번상빈 (艱難苦恨繁霜鬢)

가난하고 고단한 삶이 한이되어 귀밑머리 희어 지고

요도신정탁주배 (潦倒新停濁酒杯)

늙고 쇠약한몸 이제 술도 끊어야 하네

 

 

올해 병신년(丙申年)붉은 원숭이의 해도 이제 저물어 가는데
시성 두보는 그의 시‘등고(登高)’첫구절에서
"
원숭이 울음소리 처량하게 들린다"고 노래 하고 있다.
원숭이는 영리한 동물인 데다 사람과 닮은 면이 많데다.
 

"서유기"에서는 손오공처럼 원숭이가 잡귀를 물리치는 수호의 힘을 지녔다는
믿음도 있고. 전통미술 작품 속에선 원숭이가 장수와 다산 등
좋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 동물이다.



산 정상에 위치한 천자전(天子殿)에는 충성과 무예의 상징인 관우상이
모셔져 있다. 전국 각지에 수많은 관우 조각상이 있지만 그 호방함과
용맹스러움에 있어 석보채 천자전의 관우상을 따라올 수 있는 것은 없다.

정전과 후전에는 옥황상제와 서왕모 조각상이 있어 주민들이 폭풍우나
홍수가 나지 않도록 기원하는 장소로 쓰인다. 
정상에 있는 전전과 후전사이
건물 앞에는 압자동(鴨子洞)이라는 육각형의
구멍이 한 곳 있으며, 건물 뒤편에는 유미동(流米洞)이라는 구멍이 있다.

 

유미동은 쌀이 흐르는 구멍이라는 뜻으로 전설이 하나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부터 사원 뒤편의 구멍에서 쌀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록 적은 양이지만 스님들에게는 부족함이 없는 양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부터 욕심이 생긴 큰 스님은 구멍이 커지면 나오는
쌀의 양도 많아 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린 스님으로 하여금 구멍을 더 크게 파도록 하였는데,
구멍에 손을 대자 비록 조금씩이라도 나오던 쌀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바위구멍 하나에도 욕심내지 않고 한끼 먹을 만큼 쌀이 나왔다는 등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만한 의미있는 스토리(전설 등)를 많이 만들어 놓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가는 곳 마다 스토리텔링의 천국이었다.

 

'삼국지연의(三國演義)'에서 강조하는 충(忠)은 중국 국민들의 삶 속에 이미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다. 이 충(忠)문화가 시작된 곳이 바로 여기 ‘중(忠)현’이다.

“목숨을 잃더라도 수치스럽게 항복하지 않겠다”던 엄안의 기개와 용맹,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충절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관우가 중국인들에게 충절이 도대체 무엇인지, 충(忠)이야말로 영원 불변한 가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석보채가 400여년 동안 굳건히 제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산을 지지대로
삼아 지어진 건축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탑 내부 곳곳에서 옛 장인의 고민과 물리학적 역량을 엿볼 수 있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