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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기 베트남은 한국과 어떤 관계일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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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GO 작성일 2019-02-25 13:33 댓글 0건 조회 6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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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후에성 내 태화전(太和殿, 디엔 타이 호아

태화전은 중국 자금성의 정전인 태화전과 한자 이름까지 똑같은 곳이다.

역대 황제의 즉위식이 거행되던 장소, 평소에는 외국사절 접견실로 사용되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인근 유치원생들이 즐겁게 놀고 있는 장소로 그 모습이 평화롭다
.

태화전의 기둥 위에는 '태평신제도(太平新制度) 춘풍만제도(春風滿帝都)' 등의 문구가 보인다.
제도를 새롭게 해 태평성대를 만들고, 봄바람이 제국의 수도에 가득하다는 뜻이다.

 


베트남은 한국과 어떤 관계일까? 2

 

시련에 굴하지 않고 일어나는 七顚八起의 역사를 가진 베트남!

현대사에서, 베트남은 프랑스와 미국을 혼자 힘으로 물리친 전쟁의 勝者.

그래서 베트남을 세계 전사(戰史)3대 기록 보유국이라고 한다.

베트남은 세계 최대 제국 몽골을 막아낸 국가로, 프랑스 식민지배 92, 항미(抗美)전쟁 10년을
겪고
1975년 통일된 뒤, 베트남은 중국과도 전쟁을 치렀다.

 

한참의 세월이 지난 1991년 중국과 다시 수교했고, 1992년 한국, 1995년 미국과도 외교관계를 맺었다. <북한은 월맹 정부가 수립되자 1950년 수교했고. 한국은 1956월남과 수교했다.>
그런데 지금 베트남의 경제교역 1,2,3위 국가는 중국, 미국, 한국이다.
베트남은 경제발전을 위해 과거를 들추지 않고 있다.

 

자전거와 비행기의 싸움에서 자전거가 이겼다.

195457일 프랑스군과 베트남군 사이에서 벌어진 56일간의 싸움에서 베트남군이 승리한 것을 두고 베트남에서는 자전거와 비행기의 싸움에서 자전거가 이겼다고 한다.
이 전투의 베트남 측 지휘관은 보 응우옌 지압(Vo Nguyen Giap, 武元甲)이다.

 

전쟁 승리 후 같은 해 7월 제네바 협정을 체결하면서 17도선을 경계로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 되기는 하였으나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

급기야 지난 1975년 월남전에서도 최신 무기로 막강한 전투력을 지닌 미군을 몰아내고
남베트남마저 해방시키면서 완전한 독립을 쟁취 하기에 이른다
.

이처럼 베트남은 중국, 몽골, 미국, 프랑스와 연이어 싸워 승리를 거둔 유일한 아시아 민족이다.
이것이 바로 맹획의 저항과 불굴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몽골을 물리친 한국과 베트남

 

멸망을 면한 고려----

고려왕조는 거란족의 세 차례 침입을 막아 냈으며, 대 제국 몽골의 침입을 6차례나 막아 내는 등 투혼을 발휘했다. 그러나 7번째 침입에서 내부 정변으로 항복은 하였지만 나라가 망하는 것은 면하고 충렬왕부터 원나라 공주를 왕비로 맞이 함으로써 원나라의 부마국(사위의 나라)이 되었다.

몽골을 물리친 베트남---<몽골의 베트남 정복 실패>---

몽골제국 제4대 대칸인 몽케 칸(蒙哥1209~ 1259)은 베트남 정복을 위한 원정군을 보냈으나 베트남의 쩐()씨 왕조(1225~1400)는 몽골의 세 차례 침입을 모두 물리쳤다.

베트남의 멸망과 부활

() 왕조(1225~1400)를 찬탈하여 스스로 황제를 칭한 호뀌리(胡季犛)가 명에 의하여 멸망(1406)하였으나 농민 출신인 러레이(黎利)가 군대를 일으켜 독립전쟁을 시작하여 명나라 군대를 모두 몰아내고 황제가 되었다(후레, 後黎왕조 1428~1788), 그는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기로 하고 안남 국왕에 책봉됨으로써 국교를 수립하였다.

후레(後黎) 왕조는 조선왕조와 마찬가지로 유학을 숭상하고 과거제도를 시행하였다.

 

월남전 참전

월남전 참전 당시 우리는 남쪽의 우방국이 월남이었고, 북쪽은 공산 월맹이라고 불렀다.
월남전 기간동안 한국에서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네 차례의 파병을 통해 325천여 명의
한국군이 월남에 파병됐고
, 이 가운데 약 5천여 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다.

 

북한도 월남전에 87명의 공군을 파병하여 26대의 미군 전투기를 격추시켰다.

북한은 전투기 조종사 외에도 월남전에 100여 명의 심리전 요원과 땅굴 전문요원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병 북한군은 조종사 외에 기술요원 등도 파견하였다고 하는데 이들은 월맹군의 군복을 착용하였다고 한다.

-베트남, 참전 전사자 묘역 보존관리

베트남은 하노이에서 동북쪽으로 60km 떨어진 박장(bac giang) 지방에서 북한군의 월남전 참전 전사자 위령탑과 14구의 시신이 묻힌 애국열사 묘역을 보존 관리하고 있다.

 

198612, 베트남은 전쟁의 폐허와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이모이정책을 실시하였다. 도이모이(Doi Moi)라는 말은 새롭게 시작한다는 베트남어로 도이변화’, ‘모이는 새롭게의 뜻으로 새로운 변화(刷新)’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다.

따라서 낙후된 경제발전을 위하여 과감한 개혁개방정책을 시도한다는 뜻이다.

 

한국과 베트남이 다방면에서 협력할 이유와 동기와 미래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최근에 와서 박항서 베트남 축구감독 신드롬과 함께 두 나라 간의 교류가 크게 확대되어가고
국민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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