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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기 어머니의 눈물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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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08-11-12 15:56 댓글 0건 조회 8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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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가장 잘 만드시는 요리중 하나는 '시래기 된장국'이였다.
수년묵어 색깔이 거무튀튀하게 변하고 뭉싱뭉실한 된장에 겨우내 뒷광 시렁에 매달아 햇볕
못보게 말린 무우청을 서거서걱 썰어넣고 한참을 보글보글 끓여내는 시래기국은 가히 천하
일미였다.
그때야 형편이 너무 어려워 그 흔한 멸치도 장화신고 건너갈 정도로 몇마리 헤엄을 쳤지만
다만 파,마늘 그리고 소금과 고춧가루만으로 간을 마춘 그 시래기장국맛이 어떻게 그리 입
맛을 얽어 매었던지 ㅡ
국민학교 다닐때 운동회때마다 생선이니 전이니 제삿때나 얻어 먹을수 있는 갖가지 반찬이
있었어도 꼭 시래기장국만 찾아서 어머니께서는 "우리 대흥이 씨레기국 귀신이네" 하고 놀
려 대시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게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

옛 어머니들은 음식에 간을 볼때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던 '눈물맛의 간'에 맟우었다.
국물을 덮할때 새끼 손가락을 휘저어 음식의 온도를 체온과 맟우고 간을 볼때 입으로 가져
가 눈물이라는 체액의 염도(鹽度)와 같게 했는데 그래야만 음식맛이 제대로 난다는 전통적
지혜를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된 시집살이로 '눈물 서말'흘리지 않고는 음식맛을 못낸다는 속담이 실감갖게 한다.
아무리 칼로리를 측정하고 저울에 달아서 몇그램 몇스픈 하고 과학적 기준으로 조리해 봐
도 내지 못한다는 '어머니 맛'은 그렇게 슬프디 슬픈 맛인 것이다.
남도 잡가(雜歌)증에 「고추방아 눈물은 싱겁기 싱겁고 시엄니 구박은 누리디 누린데 내 팔
자 눈물은 이다지 짜디짜냐 주르르 흐르는 눈물은 시큼한데 괴였다 넘치는 눈믈은 매캐 하
더라...」했으니 얼마나 많이 울었기로 눈물맛까지 구별할수 있었을까 숙연해 지기까지 한다.

요즘음 이 '눈물맛의 간'을 낼수있는 맛꾼들이 몇이나 될까?
39.gif.
우리 전통적인 요리의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요리의 결과(result)보다 요리하는 과정(process)
에 뜻을 두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가 하는 정신적 가치에 보다 비중을 두었
었다.
같은 숯불도 불길이 센 무화(武火) 불길이 은은한 문화(文火)로 구분하고, 탄재로 덮어두는
여화(女火)가 있었는데 된장찌개를 끓일작 시면 이중 은은한 불길인 문화로 달구어야 제맛
이 난다.
'된장맛으로 이불속 며누리 들여다 본다' 는 우스개는 바로 된장 끓이듯 하는 정성으로 이불
속의 은밀한 정서를 은유한 것일 게다.

예전 마포 로타리에서 조금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최털보네 갈비집>이 있었다.
쇠갈비도 취급한다고 써 놓았지만 찾는이는 보지 못했고 주 메뉴는 돼지갈비 였는데 혼자
와서 1인분이 부담가는 손님에게는 반인분도 군말없이 팔았다.
하도 오래돼서 가격은 얼마인지 기억이 없는데 그 기막힌 맛일랑은 아직까지도 잊지못하고
눈에 삼삼하다.
당시 종로3가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저녁 퇴근후 직원들 두엇이 어울려 가면 족히 한시간은
기다려서야 겨우 구석진 자리를 얻어 앉곤 했다.
빈 드럼통에서 피어 오르는 매캐한 연탄불 냄새에 코를 막으면서도 노릿노릿 구어지는 돼지
갈비 한점은 입안에 들어 가기가 무섭게 스르르 녹아둘어 씹히는 감각도 느끼기 전에 목구
멍으로 넘어갔으니 한번 온 손님들은 단골이 되지 않을수 없었다.
맛의 비결을 묻으면 주인장은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툭 대답한다.
"손맛이지요"
이집은 갈비 재우는것은 물론 양념 하나하나도 종업원을 시킴이 없이 주인장이 직접 손으로
한다고 한다. 고기를 재울때 양념장에 버무르거나 적시어 두면 한결 간편하다.
한데 우리 최사장은 고기 겹겹을 들쳐 낱낱이 앞뒤를 뒤집어 가며 양념장을 골고루 빈틈없
이 손가락 끝으로 칠한다. 손가락을 빈틈없이 들인다 하여 이를 '맛손들인다' 하는데 미나
리나 콩나물 다듬는 것도 맛손들이고 김에 들기름 칠할때도 맛손들인다.
그렇게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니 그 음식은 연하고 별미가 난다고 믿었던 것이다.
fune.gif.
이토록 품과 정성을 들이는 음식은 사람의 건강은 물론 부부간의 사랑과 부모 자식간의 사
랑을 북돋우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영국의 80대 노 작가 카트랜드 여사가 쓴 《음식의 로맨스》라는 책을 보면, 음식에 정성을
들인 과정이 적은 소위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먹는 가정일수록 이혼이나 가정폭력이 심하고
자녀들의 일탈이 높으며 반대로 인스탄트를 거부하는 프랑스 같은 나라의 가정이 선호하는
미국이나 영국의 가정보다 더 화목하고 안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바쁘다는 핑게로 음식 만드는 것으로부터 가급적 유리(遊離)되는 우리나라 젊은 주부
들 에게는 경종이요, '맛손들인다' 는 우리 심오한 전통을 재 발견하는데는 청신호 이기도
하다.

「눈믈맛의 간」ㅡ.
아직까지 우리나이 또래의 주부들은 이'정성의 음식맛'에 완전히 등돌리지 않은것 같으니
그나마 위안은 된다. 우리집 마나님만 보더라도 한밤중에 슬그머니 손이라도 잡을라 치면
몸서리(?)치듯 홱 뿌리치지만 식탁 위 음식만드는 데서는 신혼때의 조신한 새악씨니 그
아니 다행이랴.
그래도 고요할수록 곧 태풍이 올 징조라 했으니 미리미리 주부 수업은 득해야 할듯ㅡ
어느날 홀연 마나님의 반란(?)이 있어 온통 인스탄트 식탁이 된다면 그 때의 슬픔이야 어찌
'눈물' 흘리는 것 만으로 사태가 감당되겠는가.
veronica.gif

엊그제가 입동(入冬)이 지나고 나니 벌써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스산하다.
이맘때면 아랫묵에 묻어둔 따끈한 보리밥 한그릇을 구수한 된장국에 말아넣어 맛있게 먹던
옛시절이 생각난다.
지금은 다시 들을수 없는 어머니의 그 목소리도 ㅡ

"우리 대흥이 씨레기국 귀신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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