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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기 아리랑 식당의 독한 빼갈(첫날의 황홀한 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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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경44회 작성일 2007-04-03 20:02 댓글 0건 조회 1,72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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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 식당에서의 독한 빼갈 (여행 첫날의 황홀한 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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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곳 장가계(張家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맛사지를 받고 저녁을 먹느냐? 아니면 저녁을 먹고 맛사지를 받느냐? 하는 문제로 잠시 헛깔렸던 문제를 어떻든 해결하고 나니, 시원하였지만, 우선 급히 민생고를 해결하여야만 했다기에 모두 바삐 서둘러 Bus에 올랐다.
▶ 원래 계획은 토가족의 풍장원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기로 했었으나, 맛사지를 앞당겨서 실시했기에 너무 늦은 시각이라 토가족의 풍장원은 門을 닫았기에 어쩔수 없이 우리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아리랑 식당”으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 우리가 탄 Bus가 장가계 시내에 진입하면서 매우 심하게 요동을 친다. 중국 현지 가이드 曰, 이 도로는 관광객을 위해서 4년 前인 2003년에 만든 도로라고 했는데, 도로포장 기술의 부족이라기보다는 부정부패가 만연된 가운데 언넘이 시멘트를 팔아먹었는지 “말타기 좋은 도로”라고 하며 우리를 웃겼다.
▶ Bus에 오른지 10분도 되지 않은 시각, 우리는 한글간판이 즐비한 상점들이 모여있는 한 허름한 건물의 “아리랑 식당”에 도착했다. 그런데 식당 안에는 사람들이 바글 바글이다.
복장이나 말투로 보아 모두가 한국 관광객이었다.
▶ 이곳 식당의 중국 여자 종업원들은 모두가 노란색의 치마 저고리를 입었는데, 너무 초라하게 보인다. 쥔장께서 이왕이면 좀 좋은 천으로 만든 우리나라의 색동저고리를 입히지 원!
웬지 가난한 이곳 중국 소녀에게 괜스리 미안스러운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 그런데 삽겹살 파티를 한다고 했는데, 식탁에 웬 동그랑 땡 같은 고기가 올라왔다. 이거 혹시 오리고기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생겼으나 구워먹어 보니까 분명히 돼지고기였다.
발맛사지 뿐만아니라 전신 맛사지까지 받은터라 피로가 말끔히 해소되었기에 술빨이 아주 잘 받았기에 우리 모두는 이국땅에서 처음 맞는 황홀한 밤을 위하여 그 독한 꼬랑주로 “위하여~ 위하여~를 수차례나 외쳤다.”
▶ 그러다보니 지글 지글거리던 삼겹살 기름이 철판 밑에 고여 불(火)이 붙은 줄도 몰랐다.
식탁위에 순식간에 불길이 약 50㎝까지 올랐고, 그통에 홍윤표+유미숙 부부의 폼나는 비싼 골프복에 약간의 불똥도 튕긴 경미한 안전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우정과 사랑이 가득찬 오래도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든 것이 더 소중했다.
▶ 약 1시간에 걸친 늦은 밤의 석식을 마치고 아리랑 식당 문을 나선 시각은 Pm 10시였다.
식당 앞에는 많은 이곳 묘족 아줌마들과 아이들이 과일봉지를 들고 우리 뒤를 쫓는다.
무조건 “천원! 천원!을 외치는 그 소리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마음 약한 우리네 부인들은 석류와 망고 그리고 귤 또 가끔 중국식당에서 디져트로 먹어보았단 성계처럼 요상하게 생긴 과일봉지를 사들고 Bus에 승차하여 우리네 남푠들의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 Bus기사 꿀다구의 운전석 옆에선 중국 현지 가이드 최승호氏는 우리가 머물 호텔까지 짧은 거리와 시간이었지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마이크를 잡고 또 칭을 뜅긴다.
그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열거하면서 특히 장량이 진시황제를 살해하려다 실패하여 쫓겨 살다가 이곳 장가계 황석채에서 그의 스승인 황석공(黃石公)을 만난 전설을 비롯하여, 훗날 장량이 유방(劉邦)을 도와 초나라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한 후, 한고조(漢高祖) 유방에 의해 BC201년 유후(留侯)로 봉해져 영화를 누렸으나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황실의 안녕을 위해 개국공신들을 차례로 제거하게 되는데, 장량은 자신에게도 언제 닥쳐올지 모를 불행을 피하기 위해 일체의 권력과 영예를 버리고 스스로 이곳의 산속으로 들어가 은둔하며 토가족(묘족)들에 농사짓는 법도 가르치며 같이 생활했다는 전설과 그 묘족들이 그의 인품과 덕에 반하여 자기들의 성도 張씨로 바꾸었는가 하면, 또 장량의 후손들이 번성하여 오늘날 이곳을 장씨들이 모여 사는곳인 장가계가 되었다는 그 유래를 전해 주었다.
▶ 가이드로부터 이말을 들은 우리 일행중의 張美淑(김남증 부인), 張性恩(박창환 부인), 張瀞仁(정의선 부인) 등 재경 44회의 쓰리張 여인들은 은근히 목에 힘주면서 뻐기는 것이었다.
                            - 중략 (여행문 본문중에서...)-
(참고사항)
아리랑 식당에서 찍은 사진이 없습니다. 누가 박은 것 있으면 좀 메일로 보내주세요.
그리고 원쎄게 옵빠께서는 1차 보내주신 사진 외에도 더 많이 촬영하신 것으로 아온데,
더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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