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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기 경주 남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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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GO 작성일 2006-07-03 09:35 댓글 0건 조회 2,53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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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06년 6월 27일(화) - 28일(수)
▶ 산행코스
경주시 배동 서남산 주차장(35번 국도변) → 배리 삼릉(拜里 三陵) → 삼릉계곡 → 선각 육존불 → 선각 여재좌상 → 삼릉계 석불좌상(목에 시멘트로 보(補)하였음) → 상선암 → 마애 석가 여래좌상 → 상사바위 → 금오산(金鰲山 468m) → 능선길따라 하산 → 삼릉계곡 → 배리 삼릉 → 서남산 주차장
▶ 산행시간 : 3시간 30분
▶ 참석자 : 9명(명단별첨)


山 行 日 記

● 오늘은 화수회(火水會) 날?

기상청이 발표한 일기예보에는 남해상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장마전선 때문에 전국이 구름많겠으나 남해지방과 제주에는 한두차례 비가 오겠다고 예보하고 있다. 낮 최고기온은 25 - 32도까지 되겠다고 한다. 여름 장마가 초목들에게는 생기(生氣)를 북돋아 주지만, 우리들 山行客들에게는 무더운 여름날씨와 맞물려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특히 경험 법칙상 비라도 오락가락하고 내리는 날이되면 예외없이 비옷(우비)을 입었다 벗었다 하던가,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면서 山行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장마소식에 아직까지 본격적인 비는 내리지는 않고 있으나 6월의 뜨거운 지열탓에 대기도 스모그 현상처럼 희뿌연 안개가 드리워져 있고, 회색빛 아스팔트 위로는 거북이 행열처럼 움직이는 자동차에서 내뿜는 매연으로 심신이 고단해져 가지만 하나다 산악회에서는 심남섭 대장을 주축으로 산을 찾아 노후를 건강하게,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경주 보문관광단지내에 새로 개장한 대명콘도를 찾아 길을 나선다.

● 남산을 오르지 않고선 경주를 알 수 없다.

경부고속도로 경주 나들목(IC)으로 진입하여 경주시내에서 양산 방면으로 이어지는 35번 외곽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박혁거세 신화의 발원지요, 신라 건국신화의 탄생지인 탑정동의 나정(蘿井)을 지나면 배리삼릉(拜里 三陵) 앞 서남산 주차장에 다다른다. 경주 남산 서쪽 기슭 등산로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서남산 주차장에는 주말이 아닌 주중(화요일)이라서 주차되어 있는 차량이 많지 않았다. 차에서 내리면 경주남산이 시야에 아름답게 전개된다.

● 시간의 흔적을 품고있는 남산

높지 않지만 아기자기 하고 수려해 보이는 남산이 품을 펼치고 어서 오라고 반겨주는 듯 하다. 장마철이지만 비는 오지 않고 날씨는 무덥다. 남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여러 갈래로 많지만 우리들은 이곳 배리삼릉(사적 219호)에서부터 무난한 코스를 따라 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국립공원 경주남산은 경주의 진산(鎭山)이다. 산행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금오산(468m)과 고위산(494m)을 중심으로 길게 뻗은 타원형의 산으로 한 마리 금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편안히 앉아 있는 형상같다 하여 금오산(金鰲山)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다 한다.

경주남산은 신라의 흥망성쇠를 함께 해온 역사의 산으로 많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산이다. 경주사람들은 흔히 남산을 오르지 않고서는 경주를 보았다는 말도 꺼내지 말라고 할정도로 문화유산이 많이 산재해 있는 산이다.

산행초입 능역(陵域)으로 들어서면 큰 봉우리 3개가 시야에 들어온다. 배리삼릉(拜里 三陵)이다. 배리삼릉에는 신라의 박씨 왕인 제8대 아달라왕, 제 53대 신덕왕, 제 54대 경명왕을 모시고 있는 능이다. 넓은 능역으로 들어서면 삼릉을 호위하듯 둘러서 있는 소나무 숲의 신비한 기운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주는가 했으나 무더운 날씨탓에 이내 이마에서부터 땀방울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곳 경주남산은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다.

능역주변, 호위하듯 서있는 소나무의 생김새가 곧게 자란 것은 찾아볼 수 없고 오묘한 모습으로 구불구불 휘어지거나 뒤틀린 것 뿐이라서 박병설회장께서 한마디 한다. “왜 이리 굽은 소나무 뿐인가?”고. 내 생각에는 목수들이 곧게 잘 자라난 소나무들은 어느집 대들보와 서까래 등으로 쓰기 위해서 하나씩 하나씩 잘려나가다 보니 이렇게 굽은 소나무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노자는 도덕경(山木편)에서 직목선벌(直木先伐)이라하여 곧은 나무가 일찍 베인다고 했으며, 장자는 구불구불하게 자란 나무가 재목으로서 가치가 없어 동량(棟梁)으로 쓰이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오랫동안 베이지 않고 천수를 다하며 살아 남는다고 하였는데, 한번 음미해 볼만하다.

원래 소나무를 지칭하는 한자 송(松)자는 나무목(木)변에 공작공(公)으로 옛날에는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으로 오작(五爵) 중에서도 제일 높은 벼슬이 공작(公爵)이라고 하였다 한다. 때문에 소나무는 나무 중에서도 으뜸되는 나무로서 유일하게 관직도 부여받는(예 : 보은군의 정2품송) 나무인 것이다. 그 소나무가 왕릉을 호위하면서 산과 산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 산속 박물관 경주남산

송림숲을 지나면서 맨 처음 마주치는 불상이 목없는 불상 석조여래 좌상이다. 목없는 불상이지만 의상이 정교하고 안정된 좌정에서 풍겨져 나오는 그 신비스러운 모양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불상이다. 불상 옆에는 마애 관음보살이 서있다. 자세히 바라보면 입술에 화장을 한듯한 불상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조금더 올라가다가 문화유산을 전문적으로 안내 설명하시는 분을 만났다. 안내 하시는 분께 목없는 불상에 대하여 질문하니 조선시대 억불숭유정책으로 희생된 불상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해 준다.

● 천년의 미소를 품은 선각여래좌상

안내원은 우리일행을 선각여래좌상 앞으로 안내해 친절하고, 성실하게 설명해 주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참으로 절묘한 선각여래좌상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드럽고 인자한 모습의 암각불상에서는 웃음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 아미타 여래 부처님께서는 극락으로 왕생하여 중생을 맞이 한다는 전설이 있어 모두가 아미타 여래부처님과 선각여래좌상 사이를 반복하여 왔다갔다 하였다. 불상 앞에는 촛불상자가 놓여있고 주변은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현지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 남산에는 절터가 147곳, 불상이 14체, 탑 96기, 왕릉 13개소 등 각종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고 하니 화려했던 불교문화와 신라인들의 모습이 눈앞에 조영되는 듯 하다. 특히, 안내자로부터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듣고난 뒤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풍상에 마모된 암각불상 등을 바라보며 산행하노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천년의 세월속에 앞서 올라가는 신라인의 옷자락이 환영처럼 스쳐지나감을 감각으로 느끼게 된다.

경주의 이름난 유적들은 도심 한가운데에 산처럼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고분들이겠지만 아기자기하면서도 서민들과 가까이 하고 유서깊은 유적들은 이곳 남산에 산재해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듯 역사의 흔적들은 우리에게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신라인들에 대한 이생각 저생각을 해보면서 얼마쯤 올라 왔을까, 오늘따라 철우할머니와 김숙자 사장, 정여사께서 산행하기 힘들어 하시는 모습이다. 더위때문일까? 앞서온 일행들 주차장에서 약 1400여미터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상선암에서 물마셔 가면서 기다린다.

어느 시골집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암자의 상선암은 상사바위와 바둑바위를 뒤에 두고 있어 주변 경관이 좋은데 고정 신도수가 1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박회장이 귀띔해준다. 특히 국립공원내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 보호구역이라서 절집과 그 주변이 퇴락해 있는데 관계당국의 허가 없이는 신,개축은 물론 유지보수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국내외의 수많은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찾는 암자 주변의 유지 보수 등을 조속한 시일내에 대안을 강구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온 일행들 물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기다리니 김숙자 사장께서 서서히 올라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뒤에서 늦게 올라오신 김숙자 사장등께서는 상선암에서 제공해 준 송편으로 맛있게 요기를 하고 뒤따라 오다가 하산하였다.

우리 선발대들은 박회장께서 마님들과 합류하도록 하고 심남섭대장과 심갑찬총무 등 선발대들은 상선암에서 80여미터 정도 위에 있는 마애석가여래좌상으로 향했다. 7미터 정도되어 보이는 마애석가여래좌상은 이곳 삼릉계곡에서는 가장 큰 석불이라고 한다. 이곳부터 금오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일부 암릉으로 되어있고 높은 단애를 이루는 곳도 있어 산행의 묘미를 느껴볼 수 있어 좋다.

금오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좋은데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계곡과 산능선 줄기마다 산재해 있는 문화재를 한두번의 산행으로 찾아볼 수는 없는 곳이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금오산(468m) 정상 표지판 뒷면에는 <남기는 것은 발자국, 가져가는 것은 추억뿐> 이라는 문구와 함께 <높고도 신령스런 금오산이여! 천년왕도 웅혼한 광채를 품고 있구나, 주인 기다리며 보낸세월 다시 천년되었으니 오늘 누가 있어 능히 이 기운 받을련가>라고 쓰여있다. 금오산 정상에서 기념사진 촬영후 시원하고 길게 누워있는 능선길따라 배리삼릉쪽으로 하산하는데 하늘엔 비구름이 낮게 깔려있고 잠시 약한 빗방울이 떨어지니 한무리의 새들이 푸드득하고 어디론가 유유히 날아간다.

하산 후 왕릉 앞에 설치된 안내표지판을 읽어 보노라니 “흐르는 인생의 찬가”라는 부제가 붙은 부생육기(浮生六記)에 나오는 이백(李白)의 글이 생각나는데……
부생약몽 (浮生若夢) : 덧없는 인생은 꿈만같아
위환기하 (爲歡幾何) : 즐거운 때가 그 얼마나 되느뇨.
끝없이 흘러가고 오는 천년 세월속에서 인생의 유한함을 생각해보면 권력도 명성도 덧없는 것.

이곳에 잠들어 있는 세분왕은 재위시 국가발전과 만백성의 안위에 크게 힘써왔지만, 천년전 말발굽소리와 함성의 메아리가 함께 묻혀있으리라 생각해보니 하산길이 왠지 마음이 허허로와짐을 느낀다. 이곳 등산로 양쪽으로 가을이 되면 시골 아줌마들이 진영단감을 가져와 파는데 그 독특한 맛이 그리워진다. 일행들 산행시작 3시간 30분만에 하산하였다.

이곳 남산은 작지만 평범한 야산은 아니었다. 계곡은 깊어보이고 산길 여기저기 특색있는 바위가 있고 깍아지른 단애 그 사이 벽면에 불상이 암각되어 있다. 멋진 전망과 암릉을 갖추고 있는 경주남산은 코스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지인들과 하루등산 코스로는 제격인 셈이다.

무더웠지만 즐겁고 의미있는 역사산책을 끝내고 보문관광단지내에 새로 개장한 대명리조트내에서 여장을 풀었다. 수려한 장소에 자리하고 있는 리조트의 넓은 거실에서 창문으로 바라 보이는 보문호는 호수 주변의 나무와 건너편의 산(명활산성), 그리고 하늘마져 호수속에 투영되어 한폭의 풍경화 같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리조트내 수영장에서는 아이들이 파도타기 물놀이 하기에 여념이 없다. 저녁만찬은 다함께 풍성하게 준비하여 상(?)앞에 주욱 둘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워가며 몇일전 박병설회장댁 본가에 찾아가서 직접 채취해온 싱싱한 무공해 웰빙식품인 상추, 노메인, 청경채, 치커리, 오크린 등 넓적한 잎사귀 위에 뜨거운 밥과 양념장, 고기, 마늘 등을 얹은 후 쌈을 싸서 입이 터져라 밀어 넣고 먹는 모습이 재미도 있었지만 어렸을 적 농촌 풍경이 오버랩 됨을 느꼈다. 반주 곁들여 싱싱한 야채, 고기로 만찬 후 여흥시간을 보낸 뒤 휴식.

잔잔한 호수는 밤새 주변호텔과 콘도, 라이브까페 등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품고 있다가 새벽녘이 되면 그 불빛을 호수위로 하얀 물안개로 바꾸어 춤추듯 피어오르게 하는 신비스런 모습이 가히 몽환적인데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 참석자 : 9명 (존칭 생략)
박병설 장옥영
심남섭 정명순
심갑찬 최혜자
김명기 한명자
김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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