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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기 누구나 조상님 시제가 있다~ (참고 하실분만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시제를 다녀온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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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朴 明 圭 작성일 2010-07-12 23:39 댓글 0건 조회 1,4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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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를 다녀온 후기 글을 올립니다.

 매년 음력 시월 오일은 밀양박씨 규정공파 정자공의 후손인 21세손, 22세손 조상님의 시제일이다.

 23세손이신 박영래 (현재 잿밭에 영면)조부님께서는 안강읍에서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 양지 바른곳에 터를 잡아 아들 6형제를 낳으시고

그 후손들이 소문중을 형성하여 전국 각지에서 살고있으며
 음력 6월 7일 제사와 정월 초하루날의 연시제및 추석에 지내는 절사를 지내고 있다.

 우선 시제(時祭)라 함은 계절을 따라서 일년에 네번 종묘에 지내던 제사였으나 지금은 거의 지내지 않는다.

차례(茶禮)는 음력으로 매월 초하루와 보름 또는 생일 등에
 간단히 낮에 지내는 제사이며, 정월 초하룻날의 연시제와 팔월 추석에 지내는

 절사는 우리나라의 명절 중 가장 큰 명절이고, 기제(忌祭)는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로
 오늘날 보통 제사라고 불리우는 것을 말한다.

또한 묘제(墓祭)는 시조에서부터 모든 조상들의 묘소에 가서 지내는 제사로
 대개 한식이나 시월에 날짜를 정하여 지내고 이것을 대개 시제라고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시행해 왔듯이 5개조가 끝나고 새로이 편성된
 지역별 조장의 연령순서,연장자서열에 의거

 강릉(1조) 조장님  박윤규, 박완규, 박명규, 박종찬,박소연으로 편성되었다.

2009년 양력 11월(음 10월 5일) 21일 (토) 안강 시제조는  옥계 (2조) 조장님
 박만규, 박영규, 박종국, 박종선, 박종대로 편성 되었으니 참고 하시길-*-*-

 따르르릉~~☎~♬

참석 못하여 미안하다고 하시는 윤규 형님의 전화다,~~ 걱정 마세요.
저희들이 잘 다녀 오겠습니다.

건강이나 잘 챙기세요~ 자주 들려 보지못해 죄송 합니다요.
조상님 후손으로서 조장의 책임감이 있어 동생들이 다녀오는데 새삼 걱정이 되었으리라 ..

형수님이 대신 오셔서 음료수를 접대하시며 동행을 못하는
 미안한 마음으로 형수님이 형님 대신 참석하는 일행을 위한 인사라고 생각한다. ㅋ

옥계 종식모친 형수님께서도 가지고 오신 음료수를 나는 배사장님댁에
 빈손으로 뵙기가 곤란하여 잘 챙겨서 전해드렸다.

 이 모든 성의는 조상님을 잘 모시려는 정성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출발 며칠전 부터 바쁘기 시작했다. 
날씨는 좋아야 할텐데 내심 걱정이다.

여지껏 비오는 날은 없었고 춥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것 외에는 날씨는 대체로 좋았다.
21세손 선산에 기제시 약간의 바람이 불어 축문은 아래 22세손 선영 산소에서 차례를 지낸후 소축을 하였다.

조상님께서 증조부님 산소에서 제레 후 음복과 찬을 들게 배려한겄은 바람이 없고 따뜻하기 때문일까?

참례자 후손들을 위하여 따뜻한 곳에서 음식과 음복을 맛있게 들게하고
무사히 귀향하라고 배려한 일일 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해마다 이렇게라도 다녀오는 겄이 어떻게 보면
 조상님들의 음덕에 힘입어 이만큼 먹고 사는게 아닌가 생각을 해 보았다.

정성을 들이는 만큼 복이 돌아오는 것이지 노력없이는 조상탓 내탓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암튼~~

출발 전에 조원님들께 출석여부를 확인하는 전화를 해보았다.
일요일 시간이 있다는 종찬 조카가 운전을 하기로 하고
 완규형님 내외분과 명규내외 등 5명이  아침 5시  30분에 출발 하기로 의견을 모아 약속을 하였다.

제물 준비는 조원중에 누군가가 희생을 하는 미덕을 보여 준비를 하여야한다.
올해는 우리 집에서 정성 들여 장만을 하였다.

해마다 기제일 하루 전에는 제물 준비를 하는 댁으로 누구든지 모여서
 도와주고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를 건네며 따뜻한 미담을 나누는 ~우애를 돈독히 한다.

몸이 불편하신 형수님(종대모친)께서는 일을 도와 드리지 못해도
 옆에서 관심을 가져주시는 일이야말로 동참하는 일이다.
 
옥계 종국모친 형수님과 종찬 조카 모친께서 아침 일찍 오셨다.
옥계 종식 모친형수님은 농촌의 바쁜 일손때문에 늦게 도착하였는데

 일손을 놓고 기꺼이 오셔서 도와주심에 감사드리며, 늘 관심을 가져주시는 형수님들게
 이 기회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제물 준비를 마치고 옥계까지 저의 차로 모셔드려야 하는데 버스정류장까지
 태워드린점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상부상조의 협동으로 현재까지 우애를 다지는 일로서 후손들에게
 모범을 보여주며 그 맥이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가리라 생각해본다.

안타까운 일은 신세대들이 우선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데
아직까지는 우리 형수님들이 모든것을 챙겨 주시니 마음놓고 자기 일에

 충실하고 있으나 먼 훗날 지금처럼 그대로 이어지길 소망하여 본다.
모든 것이 잘 되리라 생각하며 설상가상 제를 지내지 못할 일이 있을지언정~

단 한명의 후손이라도 슬기롭게 그 맥을 이어가길 바래본다.
조상님을 잘 모시는 것은 자신이 복을 받는 것이며 본인 잘 되라고 하는 것이다.

조상님 기제일 술잔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라.. 시계방향은 복이 나간다~~
 향불을 피우는 것은 하늘의 신께 고하며 모시기 위함과 모시잔에

 술을 붓는 것은 땅의 지신을 모시기 위함이다라는~~
또한 목욕 재계를 해라. ..

제사상 차림의 순서를 지켜라는 등등...
이 모든 절차는 조상님을 추모하는 제례행사이지만 여러 후손들이 모여서 어른들의 덕담과

서로의 안부와 집안의 엄격한 규율을 배우고 나의 순서와 차례를 알고 하는 절차 속에서
옳바름을 깨우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행의 마음가짐이 배어

아름다운 가풍을  계승발전시켜 나가는 미풍양속의 맥을 이어 가는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았다 .
형수님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음식을 만드는 부침이 냄새가 코를 자극할 때
 나는 기제일에 고할 축문을 정성들여 쓴다.

장손인 종암 조카가 초헌관인데 현 5대손 종암 불참으로 그날 참석하신 분 중
최고 어른인 완규 형님께서 감소고우로 시작한다.

고조부 측에는 현 증손 ㅇㅇㅇ 감소 고우인데 증조부 축문에 현손이라 고해서 완규 형님께 지적받았다.
요즘은 모든 물가가 인상됨에 따라 35만원 내에서 차량유류비까지
 
유효 적절하게 각 조에서 알아서 지출 할 것이며, 모자라는 부분은
서로가 조상님과 문중을 위해서 봉사한다는 희생정신으로 감수하여야 하겠다.

차량 운행의 수고로움, 현지 사정 답사 전화, 제물장 보기, 기제물 요리하기 등등
 서로가 각자 알아서 무엇을 해야 할 겄인가를 생각해 두자!

득과 실을 논하지 않고 하는 일이야 말로 진정 조상님의 숭배 정신이 아닌가 생각해 보며 잠자리에 들었다.

 드디어 기제일 새벽  4시에 기상하여 메밥을 준비 하다보니 벌써 종찬이 조카와 형님 내외분이 집 앞에 와 계셨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안강으로 출발~!!

삼척을 조금 지나면 왼쪽으로 양지바른 마을이 나타 나는데
 그 지형이 황새가 알을 품은 듯한 경치 좋은 이곳이 복규 형님 처가댁이다.

 시제때 마다 마을 앞을 지나가노라면 꼭 한마디 한다.
 우리 정귀랑 형수님 시집 잘 오셨네~~흠!~ 자상하신 형수님 얼굴을 떠 올려 본다~ㅋ

암튼~~

근덕에 다다를 쯤에 서서히 먼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길을 달리노라면 기분이 아주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비록 먼 길이지만 바쁜 일상에서 하루쯤은 우리를 낳아주신 선조님들의

제를 지내는 날이라 경건하고 뿌듯한 마음을 넓게 가지고 기제일을 맞이해야 하겠다.

가을의 황금 들판과 푸른 물결 넘치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보며
 살아온 옛 이야기를 새록새록 다지며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망향 휴게소 앞에서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막 먹으려고 하는데 관리 책임자 인듯한
 분이 우리가 준비해간 조식 보따리를 들고서는 이리로 따라 오시라며
 
우리 일행을 재촉하는데 이런 고마울 수가~~~여하튼 왼쪽 식당 편의점
사장님의 따뜻한 배려로 준비 해간 배추 된장국에 밥을 말아 맛있게 먹었다.

 ~쩝쩝~~팔아 주지도 않을 남의 식당 안에서~~흐흐

오른쪽 편의점 식당 직원은 어묵이라도 팔아 줘야 자리를
내 준다는데 왼쪽 식당 직원은 물도 주고 의자도 제공하며 자리에 앉아 드시라고 하셨다.

나올때 미안해서 형수님과 혜림 엄마가 껌, 호박엿사탕을 팔아 주었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다시 차안에서의 말씀이 시작되고... 완규 형님께서 기제일 전날 저녁에
 안강 소재 이정혁씨께 전화를 걸어 일요일 기제일 참석을 말씀드렸더니

 교회에 가기 위해 참석을 못 할 것 같다며 잘 다녀 가시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벌초게약서에 여러명의 증인이 필요한데 큰일이다.

일요일은 이정혁씨께서 종교상 부득이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댁에 계시지 않는 점을 참고하길 바란다.
2007년도에 말씀 드렸던 강교2리 밭 220여평에 우성공장 마당을 사용하는

조건의 벌초내용 체결을위한 부동산 계약서 작성을 해야하는 상황이 긴박한데
 내년으로 또 미루어야 할 처지에 놓여 일찍 서둘러 도착해야 할 겄 같았다.

 다시 또 출발하여 차안에서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졸다 재잘거리다 보니 어느덧 포항 시내를 지나 안강읍 변두리로 들어서는데 이때 진입 도로를 잘 봐야 한다.

자칫 한눈 팔면 경주 방향으로 들어서게 된다.
강교 2리에 다다를 쯤에 정지신호가 있다.

그다음 서서히 800M를 서행하다 보면 우측으로 필히 핸들을 꺽어
 소방도로로 진입하여 2~3분쯤 가다 보면 고속도로 다리 아래 이정혁님 댁이다.

빨간 적벽돌 단층 슬라브에 대문이 진청색으로 마당이 들여다보이는
 철쪽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단감나무가 보이는데. 몰래 슬쩍 따가지고 차안에서 먹어도 좋은듯 하다.

걸리지 않게끔 따든지 말던지..
우리는 제를 끝내고 인사차 들려 나올 떄 슬쩍 두개를 따서
동해시 바닷가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를 하기전에 맛있게 먹었다. 흐흐..

 그건 그렇고요~~
교회에 가시지 않았을까?  집에 계실까 ~반신반의 하면서 이정혁씨 댁에 들렸더니 다행히 집에 계셨다.

휴~~ 조상님께서 돌보셨나....
조심스럽게 벌초계약서 작성을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승락하셔서 우리차로 우성 공장으로 갔다.

마침 일하고 계시던 배사장님과 아드님이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이해 주셨다.
아들은 따뜻한 커피를 드시라고 권하면서 모두 자리에 앉았다.

완규형님께서 준비해 간 계약서를 형님이 부르는 대로 차분히 조목조목 써 내려갔다.
그 사이에 이정혁씨가 홍순대님을 전화통화로 불러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들의 말씀이 박씨 문중에서의 조상숭배 정신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고 하셨다.

요즘 젊은이 들이 조상 섬김을 소홀히  다루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데
박씨 문중에서는 매년 기제일날 보아 왔지만 한결같이 모든 분들이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다 라고 하시면서 협동심과 조상 숭배 정신에 대한 칭찬의 말씀을 침이 마르도록 하신다.
홍순대님께서 알고 있기로는 현재 땅 소유자의 남씨를 팔방으로 찾아보고 수소문도 해 봤지만

 후손들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하시면서 그냥 이대로가 좋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만약 후손들이 나타나면 불리하다.

우리쪽으로서는 증거 불충분.. 즉 고조 부모님께서 당시 부동산 매매계약서라든지
 우리땅이라는 증표가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증손들이 선영땅을 되돌려 찾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벌초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만약에 대비하기 위해
 증거자료를  챙기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완규형님 말씀에 의하면 32년전 당시 집안 어르신들로 부터 들은 말씀중에
 증조부 선영 앞 100평의 밭이 박씨 소유인 것으로 아는데 홍순대씨는 전혀
 들은 바 없다!  아니라고 일축을 하셨다.

또한 과거 `85년도까지 벌초를 하던 이상학씨 묘와 형 학봉씨 내외의 묘소가
 타인 소유의 임야와 220평의 밭과 경계선 인접에 산소를 모셨다고  하시면서

홍순대님이 동장일을 맡아볼 당시 측량을 해보았다고 하는데 우리로서는 눈으로 확인이 되지않아
신빙성이 없는 말씀이나 귀담아 들어놔야 할 겄이다.

아무튼 220평만 알고 있으면 될겄이고. 당시 돌아가신 상학님은 우리 조상님 묘를
관리하는 댓가로 선영땅을 소작하시다 작고하니 선산이 없는 자식들이 우리 선영땅에 안장을 하였는가 보다.

 그리고 1983년 4월 5일 21대조 선영 묘소 앞 측벽 공사 당시 기초에 자갈을 부어 다지지 않아
 분묘 앞이 꺼져있었는데 그당시 흙으로 채워서 일을 하는 바람에 석축이 튀어나오는
 
결과가 초례되었다고 하면서 또한 2007년 기제일에 비산먼지로 인하여
강력히 항의한 결과 해당업체에서 선영산소로 올라가는 길 하수로에
 
하수관을 놓아 다리 역할로서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고 산소까지
넓이 2m의 길을 내어 편리한 진입 도로가 개설되었으며 전방시야가
 확 트여서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홍순대님 말씀이 박씨 문중에서 하루 속히 의논하여 석축공사를 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참~! 근래에 제가 들은 애기 한말씀 드립니다. 요즘은 조상님 산소를
이장하지 않고 그대로 묵묘로 두고 묘소의 흙만 가지고 와서 납골 공원을

 조성하여 시제를 올리는 문중이 늘어나고 있다하니 고려해 볼 일 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겄입니다. 굳이 좋은 명당자리를 두고  이장을  해야하나 ~~말입니다.

몇해만 벌초를 하지않으면 숲이 우거져서 말 그대로 자연속으로 영원히 영면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현재 채석장의 임야산은 홍순대씨 산이고 공사기간을 물어본 즉
 앞으로 길어야 2~3년 후에는 공사가 끝난다고 하셨다.

먼 훗날 채석장에  나무와 풀이 덮일 경우, 대자연의 아름다운 경관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해 볼 뿐이다.
기제 후 남은 음식을 배유문 사장님과 홍순대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출발 인사를 나누고 오는길에 이정혁씨 댁에 들리니 외출중이라 방문 앞에
놓아 두고 강릉으로 3시경에 출발하였다.

오는 길에 이명박 대통령 생가를 방문하여 태어나서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기록을 보면서 지역의 경관과 지형을 살펴 보았다...

 다시 출발이다~ 차안에 음악이 흘러 나온다.
'있을때 잘해~♪후회하지 말고~♬'...다시 이야기 꽃을 피우는동안 어느덧 540Km의
 긴 여정을 끝내고 강릉에 도착 할 즈음에 만규형님과 형수(윤규)님께서 무사 귀향의 안부 전화가 걸려온다.

작은 관심을 가져주는 일이 다녀오는 우리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안전운행에 무사히 귀향하게 하여준 종찬 조카 정말 수고 하였네.

과거에도 명규 삼촌은 두세번 운행했던 기억이 나네.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러
우리 조카들이 한 시대를 또 잘 이끌어 가야 할 세상이 왔네 그려...

 서서히 다가오는 네온빛 불빛의 강릉의 밤거리는 고향 생각을 불러 오는데
갑자기 완규형님 말씀이 만규 형님께서 철도에 재직하고 계실 때 안강까지

열차로 기제를 보러 다녀오신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하신다.
영규형님 세분과 양복을 입고 폼을 잡으면서 물어물어 기차를 여러번
갈아 타고 안강읍 강교 2리까지 찾아 가셨다니 놀랍다.

그 먼길을 후손으로서 당연히 다녀와야겠다는 의무를 부여받았기에
백만사를 제쳐놓고 다녀오셨으리라~~혈기왕성한 그 시절이라 오는 길에

 경주 관광을 하였다며 그때 찍은 세분의 사진을 보관하고 있단다. 언제 한번 보고싶다.
그때 그 시절의 안강 시제일 참석 사진을~~~

그당시 22세손 준자 성자 선영님 산소앞 땅 100평정도가 조상님께서
 물려주신 조상답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정혁씨가 절대 아니라니 그또한 오리 무중이다.

 아무튼 너무 급하게 바라보지 말고 가까운 곳 부터 천천히 시야를 넓혀 가면서 멀리 바라보자.
어려운 문제는 그때그때 가서 답을 풀어가면서 살아보자.

지금부터 너무 멀리 보려니 많은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시대 흐름으로 변화가 있기 마련이니 보지 않아도 어떻게 되는지를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슬기롭게 대채해 나가는 일이야 말로 후손에게 떳떳한 선조가 될 겄이다.
암튼 형님, 형수님, 혜림엄마 종찬 조카님 모두 수고 하셨고요~~

우리집 넷째딸 정은이와 막내 종성이가 가게를 하루종일 보았다.
엄마가 용돈 오천원씩 수고했다며 주는데, 정은이가 종성이는 놀다가 이제 왔다고 이른다.

용돈을 주지 말라는 얘기다. ㅎㅎ 또 일상으로 돌아가 열두시 넘도록
 슈퍼 가게를 보면서 오늘 하루를 되새기며 2008년 1조 시제 임무를 완수하여
뿌듯함과 조상님께 감사함과 함께, 이 밤도 고운밤 되리라~~

잠자리에 들면서 이튿날이 휴일이면 하는 바램을 안고...zzzㅎㅎ
앗!~~ 공휴일이다. 땡 잡았다..ㅋㅋ 올해도 시제일이 토요일 이다.ㅎㅎ

 

해서 다시한번 말씀 드린다면 1969년에 제정된 가정의례 준칙 제 39조에는
<기제의 대상을 부모, 조부모 및 배우자로 한다>하였다. 또 44조에는
 
<행사방법은 양위가 모두 별세하였을 경우는 합설(합동제사 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하였다.
 또한 가정의례 준칙 제 40조에는 <기제는 별세한 날 일몰 후 적당한 시간에 지낸다>로 하였다.

 그러니까 1979년6월30일 밤에 돌아가신 분에 기제는 1980년 6월 30일 오후 7시경(일몰 후)에
 지낸다는 것이다. 지금의 초저녁 제사라고 본다.

주변 정서에 따라 효율적인 조상 숭배를 생각해볼 일이다.
끝으로, 기축년 새해에는 문중 집안에 두루 평온하고, 발전과 행복과
 문중번영, 모든 뜻 이루시기를 두손모아 기원 드립니다.

 새해복 마니 마니 받으소서~~

 안강시제를 다녀온 후기 글을 남김으로서 후손들이 마음에 세겨 먼 훗날이라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참고하여 대처해 나가자는 뜻으로 두서없는 그 후기를 글로 남겨 보았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기축년 새해 아침

                                                        25세손 박명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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