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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촐한 성인식 - 제6화 ---------최종탁(47회 현, 카나다 거주)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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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야부리 작성일 2006-07-28 10:52 댓글 0건 조회 1,0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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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이기동(43회 동홈웹관리자) 촬영

태어나 생전처음 겪은 순간의 사건을 치루고 나는 침을 흘리듯 입을 연채
누구에게 호되게 맞은것 처럼 그렇게 눈을 맞고 서 있었다.

"아 뭐해요? 눈은 쏟아지는데...!"

나는 거의 끌려가듯 그렇게 집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니도 참 못말리겠다. 이 밤중에 왠넘의 술은...아이구!"

친구의 말소리가 귓전에서 그저 맴돌다 땅바닥에 떨어진다.
둘이 약속이나 한듯, 아랫목에 깔아놓은 이불속으로 들어가며 줸장 아낙이 한마디 던진다.

"두분이 술을 마시든, 물을 마시든 알아서들 하시고 우린 먼저 잡니다."

눈치빠른 바람머리 아낙은 잽싸게 부엌에서 새 맥주컵과 작은 소주잔을 들고
들어와 대작의 자세를 취한다.
구워온 쥐포를 얹어놓은 신문을 앞에놓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우린 그렇게 둘만의 야한밤을 만들고 있었다.
뜨겁고 소동치는 밤을 보내며 나는 조촐하지만 성대한 성인식을 치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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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 4일의 포상휴가!
전투력이 가장 뛰어난 팀에게 주는 영광스런 보너스를 우리팀이 거머쥐었다.
그것도 일년농사중 가장 큰 농사인 천리행군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기라
휴가의 의미가 더욱 컸었고 그래서 측정에 참가했던 모든 대대원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날아갈듯한 기분으로 우리 팀원들은 휴가길에 올랐다.
우리부대는 춘천에서 약 1시간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음리라고 하는 하늘아래 작은동네였는데
그곳은 지형적으로 분지인 춘천보다도 겨울이면 약 5도이상의 차이가 나는 아주 혹독한 추위가
있는 시골마을이었다.
아직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는 도로포장이 안되어 있어서 버스나 트럭이 한번 지나갈 때면 엄청난
흙먼지가 나는 그런 시골마을인데 도로옆으로 감자며 특히 옥수수밭이 많이 있었다.
한여름 땡볕에 완전군장 구보를 할때면 이젠 적응이 되어 무뎌질 만도 한데 도로변의 주민들은
농사를 하다가도 먹을물 세례를 해 주며 혀를 차 주는 인정을 베푸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구보중 지나치는 버스에는 꼭 외출, 외박 또는 휴가를 떠나는 장병들이 타고 있었는데 그들은 대원들의
고충을 알기에 서로 눈길을 주지않으려고 창문쪽을 외면하고 지나간다.
달리는 버스앞에 마치 물방개들이 질주하듯 검은색 복장의 대원들이 약이 오를대로 오른양 목이터져라
군가를 부르며 다가온다.
우리 대원들은 누구 할것없이 어느 대대의 어느팀인가 얼른 확인하고는 일제히 눈을 돌려 그들의
눈을 피한다.
과부가 홀애비 사정을 안다고 그들의 고통을 잘 알기에 비까번쩍 차려입고 휴가길에 오른 우리와
그 순간 너무 대조적이고 미안한 마음에 그랬으리라.
차창앞으로 펼쳐지는 빼치고개의 풍광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지긋지긋하던 고갯길이
오늘만큼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오면서 우리는 어느덧 정상에서 희끗희끗 춘천시내를
보고 있었다.

춘천시내에는 명동거리가 있는데 그 당시 그곳에는 '설파'라고 하는 유명한 음악다방이 있었다.
항상 젊음으로 가득찬 그곳에서는 이따금 약간의 충돌도 생기곤 했었다.
젊은음악과 몸을 내 팽개칠듯한 고성능의 스피커소리와 재치있는 박스속의 D.J의 언변에 녹아
많은 젊은이들이 시간을 죽이는 곳이기도 하였다.

"오래 기다렸어?"

흰색바탕에 바다색 물방울 무늬가 있는 원피스에 긴머리를 뒤로 묶은 하얀색 리본이 깔끔하고
단정해 보였다.

"응! 한 40분 가까이…"활짝웃어 대답하는 그녀는 그간 뭐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얼굴과
복장등을 꼼꼼히 확인하는듯 했다.
왠지모를 미안한 마음과 가엾은 생각이 들어 나는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농을 건넨다.

"군바리 얼굴에 똥파리 붙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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