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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쟁 참전이야기(27)...끝나지않은 전쟁-고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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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兵長 작성일 2007-01-23 17:30 댓글 0건 조회 2,8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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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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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7월-
우기가 끝나고 건기로 접어든 정글은 36도이상의 살인적인 무더위로
숨이 턱턱 막힝지경이였다.
전투복위에 두꺼운 방탄조끼를 들쳐입고 위장한 철모를 눌러쓴 병사들의 몸은
쏟아져 나오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언제 어디서 적의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긴장감은 온몸의 솜털까지도 곤두세워
그로인한 열기는 목구멍까지 치받쳐 올랐다.
게다가 밤이면 베트콩이라는 공포외에 또하나의 적과 싸워야 했다.
손마디만한 열대모기떼-
몇날을 세수조차 못한 병사들의 몸은 끈적거리는 땀과 악취로 고개를 돌릴정도였다.
겨우 보급받은 수통의 물은 감로수처럼 아껴보지만 금새 바닥이 들어난다.
제발 스콜(열대성 소나기)이라도 한바탕 쏟아져 줬으면-
이때다.
"와아! 물이다1"
매복진지에 웅크리고 있던 병사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 나간다.
C-123 Fixed Wing공군기와 UH-1헬리콥터 두대가 정글위를 선회하며 뽀얀 물줄기를
마치 샤워기구멍에서 뿜어내듯 정글숲위로 시원하게 쏟아낸다.
여기저기 철모를 벗어든 병사들은 마치 소나기를 퍼붓듯 뿜아나오는 액체에 고개를
위로 젖히고 얼굴가득히 물기를 받는다.
어떤 병사는 아예 웃통을 벗어던지고 온몸으로 샤워하듯 흥건하게 젖는다.
"어이~그거 살충제니까 먹지는 말도록..."
지휘관들도 이렇게 주의는 주지만 그들역시 철모를 벗고 쏟아지는 물기에 얼굴을 맡긴다.

그러나
그때 병사나 지휘관이나 누군들 짐작이나 했으랴.
비행기에서 살포하는 그 시원한 샤워물이 인류 최악의 극독물인 다이옥신(Dioxin)
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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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 살포로 황페해진 정글)

1961년부터 1971년까지. 미국은 남동아시아 정글에 1억 파운드의 고엽제를 살포하였다.
이 맹독성 제초제는 베트남전 당시 적의 군대를 숨겨두는 정글을
파괴하기 위하여 살포되었다.
2.4.5-T 와 2.4-D라는 제초제를 1124:1의 비울로 섞어만든 물질로 그 독성이
청산가리의 수만배에 달한다는 최독극물이다.
살포직후, 잎은 마르고 떨어졌고, 삼림이 황페화되었다.
고엽제 살포 임무를 맡은 '란치핸드작전'에 참여한 군인들이 가장 많은 고엽제에 피폭되었다.

11년간에 걸쳐 미군이 월남전에서 사용한 고엽제(Dioxin)의
살포량은 2천 4백만kg으로 월남땅 4분의1인 170만ha(약 51억평)에 살포되었다.
월남전이 끝난지 11년이 지난 1981년에 미군이 고엽제를 가장 많이 뿌린 것으로 알려진
남베트남의 '지아라이.콘돔'지역에서 몸이 붙은 샴쌍둥이가 태어났다.
'베트'와 '독'이라는 이 쌍둥이는 상반신과 머리 만이 분리되어 있을뿐
하반신이 붙어 있는 기형아로 출생함으로서 베트남은 물론 국제적으로
고엽제에 대한 논란이 심각하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고엽제는 회기성(回期性)과 발암성(發癌性)이 강한 독극물이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그 중 Dioxin은 직접 노출 또는 호흡기 기관, 식수, 계곡물, 강물, 빗물 등에 의해 감염되며
각종 염증, 근육마비, 피부질환, 선천성 기형아 출산을 유발하고 그 증상은 당뇨,무기력증,
성불능증, 신경계통의 부조(不調), 피부질환,각종 암 등의 불치병을 유발시킨다.
월남전에서는 1961년~1971년까지 7백만 리터의 고엽제를 공중 및 지상살포 하였다.
현재 월남에서 300만명의 환자 중 200만명이 죽었거나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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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 종전 32주년을 맞았지만 수많은 참전용사들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고엽제와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1993년 5월「고엽제후유의증환자지원 등에 관한법률」이 시행된 뒤
2003년 12월말까지 국가보훈처 고엽제 피해신청을 접수한 파월용사는 68,000 여명이며,
그중에서 39,000 여명이 고엽제 피해자로 등록됐고 29,000 여명이 비해당 판정을 받았다.

고엽제 피해환자는 크게 '후유증(休有症)''후유의증(休有疑症)'으로 나뉘는데
후유증은 고엽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밝혀진 12종의 질병을 앓고 있는
3,880 여명의 환자가 해당된다.
반면 고엽제피해로 의심되는 21종의 질병을 앓고 있는 후유의증 환자들은
세계적으로 의학용어에도 없는 '의증병명'을 적용하고 있다며 이 방침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나라를 위해 이역만리 타국에서 싸우다 병을 얻은 전상자에 대하여
국가는 왜이리 인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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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는 지난번 모임에 참석했던 사십여명의 전우들중 2/3가 고엽제 휴유증 진단을 받고
병원이나 약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아직 신청하지 않은 나를 포함한 다른 전우들도
크고 작은 의증들을 보유하고 있는것이 참전전우들의 현실이다.

베트남 전쟁은 1975년 종식되었다.
그러나 32만 우리 참전용사들의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죽어야만 없어질 정신적 육체적 이 고통을 누가 헤아려주랴.

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줬는가?
미국의 용병이니,양민학살이니 무차별 비판만을 가했을뿐
실추된 명예회복은 제쳐두고 라도
지금 당장 고통속에 죽어가는 고엽제 환자들의 치료조차 소홀히하는
작금의 위정자들의 관점과 역사적 인식을 지켜보며
오늘도 신음속에 한옹큼의 알약과 굵은 주사바늘을 찌르며 고통속을 헤매는
전우들 생각에 잠시도 편할날이 없음을,

- 그대들이 진정 알것인가? -




(다음글은 오늘아침 베트남홈피에 올라온 어느 젊은이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저의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 하셨다가 고엽제 피폭으로 53세되시던 해부터 무너지기
시작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가래에 피가 약간 섞여 나오더니 곧 하얗고 탱탱하던 피부가 축 쳐지고
머리털이 다 빠지며 나중에는 정상으로 숨조차 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길동 '보훈병원'에 가서 치료를 시작 했습니다.
2001년부터 시작된 방사선 치료와 독한약물로 뇌경색이 오더군요.
이때부터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하기 시작했고 밥만 먹으면 기침과 함께 입안에 있던
밥알이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말씀도 못하시고 눈에 촛점도 점점 흐려지시고...
병원생활 3년동안 가정은 허물어지고 어머니와 저를 비롯한 가족들은 피폐해 졌습니다.

그렇게 이세상 제일로 생각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너무나 큰 상실감으로
엄청난 고통속에 사십니다.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당신은 목슴을 져버릴수 있습니까?' 하고 국가가 물어온다면
전 결단코 '아니오' 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왜냐?
대한민국 정부는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서는 무슨짓이나 하면서 국가를 위하여 희생한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해 주는게 없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지켜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요?
나라에서 몇푼주는 그 잘난 보상금만 받아가며 이대로 살아야 되는 걸까요?

돌아가신 아버지께 묻고 싶습니다.
'아버지! 왜 월남 가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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