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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배로 떠나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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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08-10-07 11:10 댓글 0건 조회 93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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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쟁이는 커다란 유리구슬을 탁자위에 놓았다. 거울안의 세상은 세상은 실로 황홀했다.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된 고층 누각과 전각들 사이로 아름다운 여인들이 가야금을 치면서
연꽃사이로 거닌다. 구름같은 머리와 화려한 귀걸이가 눈부시게 현란히 빛났다.대청안의
기물들은 하나 같이 보배로워 지상의 것이 아닌듯 고귀했다. 이에 사람들은 부러움을 참
지 못해 그것이 거울인줄도 잊은채 그 안으로 뛰어들어 가려 한다.
그러나 요술쟁이는 구경꾼들을 꾸짖어 물리치고 즉시 거울을 닫아버린다. 한참을 지체한
후 다시 거울문을 열어 사람들을 불러 오게한다. 오~그 사이에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지
전각은 허물어지고 누각은 황량한데 아름다운 여인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다만 한 사람이
흉한 몰골로 침상에 모로 누어 자고 있었다. 주위에는 멀쩡한 기물이란 찾아볼수 없이 온
통 먼지와 거미줄속에 귀신들의 그림자만 득실거린다. 그를 본 구경꾼들은 등골이 오싹
하여 거울을 등지고 정신없이 달아난다....」

열하일기(熱河日記)에 나오는 '환희기(幻戱記)의 한 대목이다.
연암(燕巖)은 이 대목에서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탄성을 발한다.
"그렇구나. 세상의 몽환(夢幻)이 본디 이와 같아서 아침에 무성했다가 저녁에 시들고 어제
의부자가 오늘은 가난해 지고 잠깐 젊었다가 홀연 늙는 법이니 대체 생(生)과 사(死),있음
과 없음이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리오.그러니 환영에 불과한 세상에 몽환같은 몸으
로 인연에 얽혀서 잠시 머믈 따름이니,원컨대 이를 표준삼아 덥다고 나아가지 말며 차다고
물러서지 말지어다"
letting3.gif.
인생은 원래 '빈 배'로 온것이다.
어느날 눈을 뜨니 세상이 있고 인연이 있었다.
그 한 인연에 얽혀 나를 잊고 허우단신 돌아 들었더니 흰머리 어느덧 귀밑에 성성하고 주름
은 골이 져 온몸을 덮었어라.
홀연 옆을 보니 배 한척이 따라 있는데 속은 비었고 겉은 낡아 풍파를 두려워 하겠으니 원
래 내 타고 온 빈 배가 아닌가.
저 빈것이 침몰치 아니하고 어찌어찌 이곳까지 나를 따라 온 것이 너무 신기했다.
손을 넣어 휘져어 보니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다만 먼지묻은 책 한권이 있어 무심히 펼쳐
들은 즉,
ㅡ가파른 양안 사이로 흐르는 장강을 타고 지나가는데 선장이 아주 흉흉하고 험악한 얼굴
을 하고 있는지라 좀 겁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비좁은 협곡에서 어떤 배 이물이 객선의 허
리를 들이 받았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갑판에 나가보니 선장은 태연히 물길만 바라보고
있는거라. 갑짜기 이 사람이 도통을 하였나 하고 살펴보니 받은 배는「빈 배(虛舟)」였다.
이때 장자(壯子)는 무릎을 친다. 깨들은 것이다. 저 배처럼 내 마음이 비었으면 사람을 들
이 받아도 화를 낼 일이 없겠구나. 자기를 비우고 세상을 떠 노닌다면 그 누가 나를 해 하
리오(人能虛己以遊世 其享能害之)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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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을 들고 뱃머리에 걸터 앉는다.
푸른색 찻잔의 짙은 농염속에 배와 나와 그리고 산과 강이 주름살 되어 엉겨든다.
'심즉리(心卽理)'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같은 태제(太題)들도 그 속에 포개진다.
붓다와 공자의 사유(思惟)가 <허주의 담론>으로 내게 회귀하고 있는건가.
앎이 곧 삶이 되고 삶이 곧 나의 인연이였다면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들을 겪어오며 깨달은
'명심(冥心)'혹은 '도(道)'란 앎 과 삶 사이의 일치ㅡ 그것에 다름 아니리라.
「고요히 앉아 있는 자리엔 차가 절반이나 즐어도 향기는 여전하고(靜座處茶半香初)
빈산엔 사람조차 없는데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구나(空山無人水流花開)...」
초의(草衣)의 선다일여(禪茶一如)도 일찍이 <허주의 몽환>을 깨우쳐 주려는 것인가.

아주 무심경(無心境)이라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툭~찻물이 흘러 떨어진다.
손끝은 멀쩡한데 마음이 흔들렸음이구나.

바람은 산란하니 지나간 흔적을 찾을수 없고 강물은 흔들리니 남긴 그림자를 볼수 없다.
육십평생 무엇하나 채우지 못하고 빈채로 일렁이는 저 배가 너무 가여워 주름진 눈시울에
이슬이 맺힌다.
그래도 몸 누울 방 한칸 밥 지을 무쇠솥 하나는 장만하고 떠나니 그로 애써 심제(心制)하나
소매속을 파고드는 강바람의 스산함이 괜스레 슬퍼져 또 한번 찔끔하고 눈시울을 훔친다.
문득 강심을 가르는 갈잎이 하나 있어 돋우어 살피니 지난여름 청산을 떨어 울리며 고아한
목소리로 노래 부르던 플벌레 한마리가 초라한 날개를 접고 그 위에 엎드려 울고있다.
찌르륵 찌르륵 그 소리가 구곡간장을 찢을듯 슬프디 슬프다.
같은 풀벌레 소리인데 그때와 지금의 소리가 저토록 다른것은 왜일까.
누구에게는 '이것'이 되고 또 누구에게는 '저것'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듣는가 에 그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음을 가진 나(我)'가 듣는가? '마음을 놓은 나'가 듣는가? 의 차이가 그것이
아닐까. 슬플때 듣는 소리는 슬프고 기쁠때 듣는 소리는 기쁜 것이니 풀벌레 소리가 슬프
고 기쁜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슬프고 기쁜것이다.
<부디 밖으로 구하지 말라.그럴수록 더욱 나와 멀어 지리라...>
과수게(過水偈) 게송은 그래서 '나를 존중하라'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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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배는 이제 그 홀로 물살을 가르며 흐를 것이다.
그냥 두어둬도 멈춤없이 갈길을 갈 것이다.
아쉬워 할것 아무것도 없다.
원래 빈배였지 않은가.
거기 담긴 슬픈 사연들 일랑 여기 일러 무삼하리오.
다만 딱하나 소원 있다면 누가 저 안에 박주 한병과 소채 한 접시만 넌즈시 챙겨 넣어 주었
으면 ㅡ
혹여 산 모퉁이를 돌다가 목마를 작시면 한시름 그것으로 축이게 ㅡ

「빈배로 온 인생 그냥 빈배로 떠나시구려(虛舟來 虛舟去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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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한 사람이 우리곁을 떠나갔다.
많은걸 갖은것 같았으나 가고 난 자리에 남은 것은 한줌의 허망뿐 ㅡ
화려한 명성도 만인의 부러움도 한낱 티끌속에 던져두고
홀홀히 왔던 길 다시 돌아갔다.
아직은 그의 숨결이 우리곁에 그냥 남아 있는것 같아 슬프다.
아끼던 지인들의 오열속에 떠나는 그를 보며 한잔 차거운 술로 이별을 곡했다.

내 그대에게 당부 하노니
부디 미련일랑 남기지 마오
원래 빈배로 왔었으니 그냥 빈배로 떠나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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