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자유 게시판

축구는 작은전쟁, 강릉의 희망~

페이지 정보

작성자 축구애호가 작성일 2010-07-13 12:27 댓글 0건 조회 1,639회

본문

흔히 축구를 전쟁의 축소판에 비유한다. 'Striker', 'Defender', 'field', 'tactics', 'Wing' 등 수많은 전쟁 용어가 사용되며, 90분간의 혈투가 전쟁을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승패는 병법에 의해 좌우되며, 축구도 병법인 전술싸움이다. 상대에 따라 사령탑이 어떤 전술을 펼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전술의 변화와 발전은 백년전쟁, 보불전쟁, 나폴레옹 전쟁, 1, 2차 세계대전에 따라 진화가 거듭되었으며, 축구 전술의 변화와 발전도 월드컵이라는 세계대전에 의해 진화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손자병법의 저자 손자가 오왕 합려에게 발탁되는 과정이 나와 있다. 그 과정을 보면, 오왕 합려는 손자를 시험할 목적으로 손자에게 궁녀를 훈련시키라고 하자 손자는 궁중의 미녀 180명을 두 팀으로 나누고 각각 왕이 총애하는 후궁 두 사람을 대장으로 삼아 병법을 훈련시킨다.

손자는 ‘앞으로’, ‘뒤로’, ‘좌로’, ‘우로’라는 간단한 명령을 북을 치며 호령하였으나, 궁녀들은 웃으며 말을 듣지 않았다. 손자는 약속이 분명치 않고 호령이 철저하지 못한 것은 대장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다시 설명을 하고 나서 북을 치며 호령하였다.

이번에도 궁녀들은 웃으며 말을 듣지 않았다. 손자는 약속이 분명치 않고 호령이 철저하지 못한 것은 대장의 책임이므로 좌우의 지휘자인 오왕 후궁인 대장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차석인 시녀를 대장으로 삼아 북을 울리자 궁녀들은 전후좌우 등의 동작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감히 웃는 궁녀들이 없었다.

전략과 지략이 난무하고 전투의 집결체인 축구가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인기가 있는 것이 손자병법의 축소판인 용병술에 의해 승패가 갈리는 데서 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90m~120m의 전투지경선에서 기습, 역습, 심리전과 적의 취약한 부위를 강타하는 포위, 아군의 우세한 세력을 이용한 중앙돌파, 적의 수비가 강할 때의 우회 공격 및 측면 공격 등 우리는 축구 그 자체를 작은 전쟁이라고 한다.
 
축구를 관람하다보면 스리백(3back)과 포백(4back)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쉽게 말해 스리백에는 수비수가 3명이, 포백에는 4명이 포진해 있는 형태다. 이를 근간으로 한 시스템의 줄기는 다양하여, 스리백의 경우 3-4-3, 3-4-2-1, 3-5-2, 3-6-1 포메이션 등이 있는 반면 포백은 4-4-2, 4-3-2-1, 4-4-1-1, 4-3-3, 4-3-1-2 등의 시스템이 있다. 

물론 단순히 포백이냐 스리백이냐에 따라 공격 성향과 수비 성향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세부 성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스리백과 포백라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측면에 있다. 포백 라인의 경우 좌우 측면에 위치한 수비수는 팀이 공세로 전환시 공격수로 변모한다.

축구 전술도 월드컵을 통해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다시 스리백으로 변화되고 있는데, 내가 알고 있기로는 스리백이 세상에 나온 것은 1930년 잉글랜드가 3명의 수비수와 3명의 공격수, 그리고 4명의 미드필더가 포진한 3-4-3의 전술로 우루과이와 이탈리아가 채택해 각각 2차례나 월드컵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축구의 전술교범으로 떠올랐다. 스리백의 장점은 미드필더에 포진한 2명의 윙백이 수비로 내려올 경우 5명의 수비수로 철벽라인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축구황제 펠레를 중심으로 한 포백을 근간으로 한 4-2-4 시스템을 들고 나왔다. 좌우 윙백이 적극적으로 공격으로 가담하고 허리를 강화한 결과 우승이었으며, 현대축구 흐름을 뒤바꾼 포백이 세계 축구의 대세로 자리 잡던 순간이었다. 이후 82년 스페인 월드컵까지 포백을 근간으로 한 팀이 월드컵을 주도했다.

그러나 전술은 전술일 뿐, 기량이 출중한 인물에 의해 시스템이 바뀌는 법이다. 80년대 중반에는 축구의 천재이자 악동인 아르헨티나가 마라도나를 앞세운 3-5-2 전술을 선보여 국제 무대를 발칵 뒤집어 놨다. 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우승한 것도 변화의 선봉에 섰기 때문이었다. 스리백이 다시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

축구전술에는 원칙이 있으며, 이 원칙을 변용하여 부단히 연구하고 개인의 특성에 알맞게 전술을 개발해야 한다. 졌다고 학생들을 나무라거나 몰아쳐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패인의 책임은 내 책임이라는 덕장의 면모를 보일 때 용병술의 진수가 아닌가 한다.

이번 단오 때의 농상전 정기전에서 나는 감독의 전략, 지략 그리고 역량을 보았으며, 또한 학생들의 잠재적 가능성을 보았다. 강농 축구는 강릉, 아니 강원도의 자존심이다. 다시 한번 심기일전하여 옛날의 전통을 계승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자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