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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는자, 너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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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11-05-19 11:40 댓글 0건 조회 1,09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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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빗줄기가 요란했다.
중생을 구제한다는 붓다의 광채는 어디에도 찾을수 없었다.
한낮인데도 캄캄한 어둠마져 삼라만상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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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있는걸까?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무엇을 찾아야 하는까?
그리고 난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이 아무것도 확실치 않은 곳에 나는 왜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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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는 아수라장과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그들이 든 우산은 자칫 눈밑을 찌르듯 위협하고,
바닥의 흙탕물은 무릎까지 튕겨 올랐다.
법당으로 향하는 길은 금줄로 막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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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도
한국 불교계의 태두인 조계사는 웅중한 자태로 우뚝 서 있었다.
'대웅전'이라는 금색 현판이 커다란 무게로 한눈에 지쳐왔다.
이따금씩 행사장에서는 호불(號佛)소리가 들리고 왼편 한켠에는 찬불가가 은은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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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의 마당 한 가운데 선 500년 회화나무에 걸린 오색연등이 빗소리에 따라 운다.
연등의 크기는 여일(如一)한테 내게 들리는 소리는 왜 각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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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년전, 마조선사(馬祖禪師)와 제자 백장(白丈)은 해저무는 강기슭을 걷고 있었다.
그때 석양의 붉은 빛을 머리에 이고 들오리떼들이 서쪽하늘로 줄지어 날라갔다.
마조가 물었다.
"저게 무슨 소리냐?"
"들오리떼 울음소리입니다"

한동안 말없이 걷던 마조가 다시 물었다.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어디로 갔느냐?"
"멀리 서쪽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마조는 갑자기 백장의 코를 잡고 비틀었다.
당황한 백장이 아얏! 비명을 지르자 마조가 호통을 치며 말했다.

"이놈아! 멀리 날아 갔다더니 바로 여기 있지 않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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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틈을 비좁고 금줄 쳐 놓은 조계사의 법당앞으로 좀더 닥아갔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그순간 요란하던 빗소리가 뚝 그쳤다.
빗소리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빗소리는 여전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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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잡는 형상,귀로 듣는 소리,그리고 일상에서 일으키는 생각과 마음은
모두 '색(色)' 이다.
우리는 늘 그것을 잡는다.
그러다가 종래는 지치고 만다.
색에서 색으로, 형상에서 형상으로 걷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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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새 울음소리, 색을 잡았다.
그러나 서쪽 하늘로 새가 사라진 뒤에는 그 순간 일체의 소통을 잃었다.
그 울음이 일어났던 근원이 어디였는지 도통 알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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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가르쳤다.
"모든 색은 비었다(空)."

새 울음은 공에서 나왔고 공으로 사라진다.
색과 공의 경계를 자유롭고 막힘이 없이 순환할때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서쪽으로 사라진 새 울음소리가 코를 비틀었을떄 다시 나타난 것이 바로
색과 공의 한 몸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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뗑그렁~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석탑의 곳곳에 매달린 풍경소리가 빗속에서도 청량하다.
바람은 형체가 없는 공인줄 알았는데 이 역시 색이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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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감로수 한줌을 부어 아기 부처의 몸을 씻긴다.
관불((灌佛)은 스스로의 일심발분(一心發奮)을 떨쳐 대오각성으로 나가기 위한
작은 걸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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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등 사이로 여전히 쏟아지는 빗속을 아랑곳 않고 법당으로 향하는 길고 긴 줄을 보며
구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누군가 부처의 손바닥에 올려 놓은 소박한 연꽃 한송이ㅡ
염화시중(捻花示衆)으로 이심전심의 묘법을 깨달은 마하가섭(摩訶迦葉)은
만법이 스스로에게 존재하는 절대의 문턱을 이미 넘고 있었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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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의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다니며 법을 구할때
참된 공부는 이론체계를 넘어서 실천과 행동을 통해 성취해 가는 수행임을 역설했다.
그는 말했다.
"붓다는 '말에 의지하지 말고 내용에 의지하라'고 했다.

결국
모든 것은「마음」ㅡ그것에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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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이 부처가 내민 연꽃의 의미를 깨달은 것 역시 가섭의 마음에서 얻은 선지식일 것이다.
저 나뭇가지에 빽빽히 매달린 연등에 적힌 이름 석자와 소원성취의 염원들도
바로 자신의 마음에서 얻은 선지식일 터이다.
세상 만법은 이렇듯 모두 마음에서 비롯되니 마조선사가 말한「즉심시불(卽心是佛)
이 넉자도 같은 해석일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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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이 도(道)인가.
색에도 공에도 치우치지 않은, 아무것에도 집착 없이 자유로운 평상심이 곧 도(道)일지니,
'나'에게 머물면 '나만의 마음'뿐이요 나를 벗어나면 '너의 마음'이 나오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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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의 구분 없음이 곧 평상심이라
그것은 물처럼 자유로워 바위를 만나도 언덕을 만나도 들을 만나도 산을 만나도
구비구비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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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움은 곧 벗어나는 것이다.
붓다가 끊임없이 가르쳤던 "집착하지 마라, 집착하지 마라, 붙들면 옥매이고 그러면 막힌다" 는
집착의 대상 역시 비어있을 뿐임을 깨우치려는 것일 터.
그래서 종래는 공일 뿐인 그 집착의 먹구름을 걷어내려 8만4000에 달하는 법을 설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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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석의 용트림 머리에도 덕왕전 용마루에도 소리없는 빗줄기가 쉬엄쉬엄 흐른다.
까마득히 높아 보이는 것은 모든 것을 쉬이 잡을수 있다고 자신한 내 욕심이
턱없이 과문한 탓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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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어려우니 한발도 들어 놓기 싫고,
그런데도 마음은 비우려 하고 법만을 얻으러 하니,
실낱같은 빗줄기가 폭포수로 보이고 물그릇 만한 연등이 산처럼 눈앞을 가로막을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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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믈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초기불교 경전인 '숫다니파타'의 유명한 계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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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소리, 바람과 그물, 진흙과 연꽃,.....
둘로 나누면 불가능한 이것들이 한몸으로 묶었을때 좋고 싫음의 구분은 사라진다.
바로 나의 오해, 나의 착각을 걷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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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전심시하법(以心傳心是何法)>ㅡ
일주문 붉은 기둥에 걸린 저 한줄 법문.
모든 법은 곧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니 어찌 깊고 두렵지 아니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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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았다.
'즉심시불(卽心是佛)-마음이 곧 부처'라는 깨우침을 얻은 마조선사도 한때는 수행의 길에서
마음에 낀 먹구름을 걷어 내려고 소를 때리지 않고 수레를 때렸다.

어떻게 해야만 소와 수레를 구분할수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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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예불이 모두 끝났는데도 불자들은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일주문 처마에 걸린 연등에서 투두둑 주먹만한 물덩이가 얼굴을 때렸다.
..........무엇을 얻었는가.
뻥 뚫린 가슴은 그대로 인채 흠뻑 적신 바짓가랭이를 추스리며 절을 나섰다.

뗑그렁~
시방세계에 자비를 베푸는 범종소리가 등뒤에서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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