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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습지 옆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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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 때 51 작성일 2013-04-19 09:19 댓글 0건 조회 9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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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째재할 때 학교에서 소품가면 초당 솔밭 머 이딴데로 갔습니다.

그때는 갈데가 거 밖에 움써서 군정교를 지나 선교장과 경포호수 옆 냇둑을 걸으며 소풍을 갔습니다.
그 왜 대나무 장대에다 1-1 또는 1-2 이케 써진 깃발을 키가 좀 크고 힘이 센 반 아가 맨 앞에서 메고 가면 우리들은 2열 종대 쫄로리 주르서서 손잡고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아....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 세상.....머 이딴 노래를 부르며 소풍을 갔습니다.

그 때는 어머이들께서 다라(옳은 말은 “대야” 이며, “다라이“ 라고 함) 에다 찰밥을 해서 머리에 이고 따라오셨습니다.
물론 동생이 언나인 경우 언나를 등에 업거나 아니면 그 언나 손잡고 따라 오셨습니다.

어머니들은 또 선생님들께 드릴 음식도 준비하시기도 했습니다.
때론 소풍날이라 옷 한 벌 또는 바지 남방 등 새옷을 간혹 사입기도 했으며, 왜 그렇게 소풍날 받아 놓으면 비가 자주 오고 그랬습니다.
비가오는 이유는 학교 질 때 용이 나타나서 그 용을 잡아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있었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반나절 걸어 초당 솔밭이나 경포해변 솔밭에 도착하면 반별로 둥그렇게 쭉 둘러앉아서 손뼉치고 노래부르고, 수건돌리기하고 머 이랬습니다.

요즘 아이들들 노는 방식하고 참.....

그 시간이 지나믄 점심시간입니다.
그 점심 뭐라 할 수 없습니다.

어머이가 안 계시는 아들은 할머니가 따라 오셨고, 어머이가 바쁘거나 사정이 생겨 소풍에 못 따라 온 아들은 동네 친구 또는 형, 누나 어머이가 대신 그 아를 찾아서 점심을 메기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후가 되면 학교 전체 학생들과 어머이, 할머니, 선생님 등 모두 모여 장기자랑을 하였습니다.

지금이야 세월이 수 번 변해서 소풍 갈데도 많고 하지만 그땐 그랬습니다.
 
학교 갔다가 도시락("벤또"의 옳은 말은 ”변도(辨當)“이며, 이 말이 일본 말인 줄도 모르고 ”벤또”라고 했습니다.)을 냇가에서 까먹고 버드나무 껍데기 버들피리(일명 “줄래 튼다"고 했습니다.) 불던 시절도 이젠 머리(머리는 털이 있고, 대가리는 털이 없다고 합니다. 착오없으시기 바랍니다./ 예) 소머리, 돼지머리/북어대가리, 생선대가리, 꽁치대가리 등등/ 등은 털이 있고 없습니다. 이해가 되셨으리라 믿습니다/이상한 생각은 상상하시지 말아주셨으면합니다.)가 허얘졌습니다.

5월 가정의 달입니다.
동문 선후배님 가정에 축복과 행복이 가득하는 최고의 명품과 같은 봄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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