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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모진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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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13-06-12 19:53 댓글 0건 조회 3,06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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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와 죽은자는 어디선가 만난다.
내 비록 내세를 믿지 않는 무종교인이지만 이 말만은 분명한것 같다.
우리는 살아서는 월남전쟁터에서 만났고 죽어서는 저 세상에서 만날것이다.
'전우의 집'이라는 아주 특별한 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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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언제나 찌는듯이 덥다.
아마도 6월은 '잔인한 달'이기 때문이다.
6월이 잔인한 것은 동족상잔이라는 비극 때문만은 아니다.
전체 참전국의 사망자를 모두 합하면 200만 명에 달했으며 이중 한국의 사망자는 백여만 명이 넘었고
그 중 85%는 민간인이였다.
약 20만 명의 전쟁 미망인과 10여만 명이 넘는 전쟁 고아를 만들었으며 1천여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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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엄청난 비극을 겪고도 아직도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백일몽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황당한 이야기들 중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내 버려둬야 한다. 왜냐 하면 통일이 되면 그것은 곧 우리것이 될것이니까..."
6월이 잔인한 달인것은 바로 이런 종북주의자들의 준동이 가장 거세어 지는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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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추념식에 참석하였지만 올해는 건강도 않좋고 해서 아예 집에서 늦게 출발했다.
현충문은 예나 다름없이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록색 취두(鷲頭)위를 뜨거운 태양이 소리없이 미끄러 진다.
그것은 용두(龍頭)에서 잠시 머물더니 한 순간 푸른 6월의 하늘로 소리없이 스러진다.
아침부터 27-8도가 넘는 더위 탓인지 꼭 조여 맨 넥타이가 답답했지만 저기 저 따가운 볕에 누워있는
전우들을 생각하면 감히 풀어 헤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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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방방곡곡에서 그 옛날 함께 싸운 전우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발걸음은 느리고 몸체는 균형이 안잡혀도 눈동자 만은 형형하다.
낙동강 전투에서, 배티전투에서, 백마고지전투에서....그리고 안케,두코전투와, 짜빈동 전투에서 살아난
그 용맹스러운 그들이 여기 전우들의 넋이 잠들어 있는 현충원으로 모여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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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희뿌연 한강의 안개가 시야를 가린다.
좌로 우로 질서정연히 도열해 있는 비목들 ㅡ
저들이 우리 생명을 지켰고 저들이 우리 국토를 지켰다.
바둑판의 선처럼 조금도 흐트러 지지않고 분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열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론으로만 배운 소위 탁상이념주의자들은 모른다.

공산주의자들의 1차 투쟁은 이념의 전쟁이다.
역사는 보수와 중도의 싸움이지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아니라고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애초에 진보나 좌파는 이념의 결정에서 밀려나 있는 것이다.
중도적인 사상은 이념을 우상시 하는 도그마(dogma)보다 실용(Pragmatism)을 중시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한쪽 주장에 치우치지 않으므로 분열의 함정에서 자유로울수 있기 때문이다.

분열은 두렵다.
분열하면 싸움에 지게 된다.
주관이 모자라면 대중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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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하사 이건렬ㅡ
맹호 26 연대소속...철수 2개월 전 전사...
어디 안타까운 죽음이 이 뿐이겠는가?

이것도 작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년전 2009년 현충일날 송곳처럼 내려 꽃히는 한낮의 따가움도 아랑곳 하지 않은채 백발의 할머니
한분이 아까부터 요지부동 망부석마냥 앉아 있었다.
차가운 비석에는 <육군하사 이건열 >라는 이름석자가 선명하다.
펄럭이는 촛불옆에 타고난 향재가 수북한걸 보니 아마도 아주 오래 그렇게 앉아 계신가 보다.
인사를 하고 잠시 비목을 향하여 읍한 후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어 보았었다.
당시 최진현 전우와 함께 할머니께 사연을 듣고 그 이야기를 파월전우 싸이트인 베트벳에 올렸다.
그리고 엊그제 저녁 4년전 이야기를 다시 인터넷에 옮기면서 그가 생각나서 11시경 이하사의 묘소를
찾았을떄는 당시와 마찬가지로 사진은 그대로 있었으나 참배객은 아무도 없었다.
혹시 할머니께서는 돌아 가시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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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한 생각을 뒤로 하고 지영길 전우님의 묘소를 찾아 참배를 하는데 배무언 전우님이 말씀하시기를,,,
"심전우! 어제 올린 이건렬 하사 묘소에 SBS에서 취재 나왔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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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아직도 생존해 계셨다.
올해 여든넷이라고 하신다.
방송국에서 약 20여분간 취재를 했는데 할머니는 시종 울음속에서 예전 우리에게 들려 주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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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이 한창이던 1967년 이건열 병장은 부모님께 장문의 편지를 썼다.
월남에 자원하여 1년간 복무하면 전투수당이 나오므로 제대후 그것으로 대학입학금을 마련
할수 있으며 또한 이 기회에 아버지를 죽게 한 공산당에 대한 원수도 갚을수 있으니 너무 걱
정을 마시라는 내용이였다.

파병된 이건열 병장은 수색정찰임무를 맡았고 수시로 야간 매복작전에 투입되었다.
크고 작은 작전에 수없이 참가하였으나 다행히 별 사고없이 복무하던 중 불행은 한창 우기철인
9월경에 일어났다.
수색정찰을 나갔던 이건열 병장의 조가 베트공의 역매복에 걸려든 것이다.
결국 이 전투에서 이건열 병장은 장열히 전사했고, 가족에게 통보가 왔을때 그의 어머니는
평소 결혼을 약속했던 박인순 처녀와 근처 절에서 아들의 무운장구를 비는 백일치성을 드
리던 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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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의 싸늘한 재로 돌아온 아들의 주검앞에서 어머니는 혼절했다.
국립묘지에 안장되던 날도 울고 또 울다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아품이 자식을 가슴에 묻는 다는 것인데...

'내가 죽였재~ 갸는 내가 죽인거여... 돈때문에 내가 죽인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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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영혼결혼식였다.
아들의 약혼자인 박인순 처녀가 이하사가 전사한지 얼마되지 않아 우연한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말을 하면서 할머니는 그떄 우리에게 말한것 처럼 분명 자살한 것이라고 하신다.
"아마도 서로 끊지 못할 인연이였던가 뵈.
둘다 처녀 총각이였으니 영혼결혼을 시켰지. 나중 한풀이굿을 하는데 둘이 나란히 손잡고 나타나서
행복하게 살겠으니 아무 걱정말라고 하더라구...
암만~잘 살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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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머니의 건강을 물으며 이것 저것 얘기를 나누니 취재진이 궁굼한지 '어떻게 되시는 사입니까?"
4년전 일화를 설명하고 '혹시 이 할머니 사연 인터넷에서 보고 아신것 아니예요? 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 분명 우리 베트벳일터이니 인터넷의 위력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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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못뵈었는데 않오셨냐고 물었더니 몸이 좀 편치 않아 오지 못하셨다 했다.
그래도 40여년을 거의 한해도 거르지 않으시고 그 먼 광주에서 오라 오신다니 참으로 부모의 마음은
가이없음을 새삼 느낀다.
오래오래 사시라고 인사를 드리고 일어 서려는데 내 손을 꼭 잡고 '선상님도 아프지 말고 잘 사시우"
부디 건겅하시어 내년에도, 후년에도 할머니를 다시 만나 뵐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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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들입니까?"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비석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연신 술잔을 기울리고 계시기에 물었더니,
"아니요. 동생인데 조카들 여럿이 서울 사는데도 몇해전 부터 한놈도 않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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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망각을 부른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허물수 없는 것.
가슴에 묻은 그리움과 한이야 천년을 갈듯 하겠지만 인간에게는 망각이라는 편리한 기능이 있으니...
"혹여 당신 내 죽고 난후 날 잊으면 않되오"
이런 부질없는 욕심일랑 버리고 지금부터 모두 버리려는 '빈것'의 준비가 필요하리라.

월남묘역ㅡ
그래도 제법 많은 참배객들이 붐빈다.
그러나 같은 시각 그 보다 윗쪽에 위치한 6,25참전 선열들의 묘역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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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묘역에는 딱 두어군데 참배객들만 보일뿐
6월의 뜨거운 햇살에 달구어진 비석과 자그마한 태극기가 펄럭이고 인적없이 고요하다.
이렇게 헤어짐은 빠른 망각을 갖어온다.
죽으면 그뿐....무엇을 얼마만큼 더 기대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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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어떻게 더 해 줄수 있는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지만 너무 큰 기대도 결국은 지저분한 욕심이 되고 말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58회 현충일 대통령 추념사를 꼼꼼히 들여다 보다가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고
한편으로는 씁씁한 기분을 떨쳐 버릴수 없다.

「또한 머나먼 이국땅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젊음을 바친 유엔의 참전용사
여러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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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에 참전해서 국위를 떨친 참전용사」라는 어휘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 건가.
두리뭉실 <유엔의 참전용사>라는 표현을 쓸수 밖에 없었던 고뇌를 어찌 모르랴 마는.....

박정희 전대통령 내외의 무덤앞에 조성된 자그마한 연못에 희디흰 연꽃이 오손 도손 피어나 있다.
불법의 그 깊은 뜻이야 반푼이라도 알랴마는 불교를 상징하는 그 연꽃을 바라 보면서 잠시
「공(空)」이라는 화두를 떠 올린다.

아무것도 갖지 말고...아무것도 바라지 말고...아무것도 일념(一念)조차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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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2013년 6월 현충원 참배를 하면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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