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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경조사

준배도 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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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50 작성일 2023-11-15 16:30 댓글 0건 조회 7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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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배도 떠나고

 

 

자고로 이별 없는 인생은 없다 했다.

만남이 있었기에 이별이 발생하고 그로 인하여 가슴 아픔이 발생하게 된다.

물론, 꼴 보기 싫은 놈과의 이별을 속 시원할는지 모르지만 전반적으로 이별의 

상징은 가슴 아픔을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12일 나의 농고 친구 준배가 이승을 떠났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예전부터 지병이라도 있어서 아팠다면 충격이 덜했을 터인데 그렇지도 않은 상황

에서 느닷없는 부고소식은 더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와 만난 것은 47년 전이었다.

그야말로 인생에서 막 철이 들던 무렵이었다.

실습답 바로 옆에 있던 주황색 함석지붕의 목조 건물에 당시 원예과 학급이 있었다.

거기서 처음 만난 것이다.

중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이 고등학교로 헤처모여식으로 다시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야말로 불특정 소수가 모여서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기치를 올렸던 것이다.

 

 

농공고시절에는 많은 것을 지지고 볶았다.

공부야 기본으로 했겠지만 타 학교에 비해서는 약했던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왕성했던 젊은 혈기를 다방면으로 분출했던 시절이었다.

교실과 실습실을 오가면서 전공분야에 기술과 이론을 갈고 닦았다.

 

 

교실에서는 수많은 일화를 만들었다.

보통의 학생들이 생각하는 차원에서 벗어난 행동도 많이 했다.

학교란 곳은 교과서를 벗어난 일을 했을 때 이단아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선생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만 제대로 된 학생이었던 시절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문화가 있긴 있지만 과거보다는 많이 완화되었다고 본다.

농공고 시절에 교실에는 특이하고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았다.

각자 개성들이 톡톡 튀는 학생들이 많았던 관계로 그 다양한 성향을 선생님들이 다

 맞추어 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교실 안에 문화는 두 가지로 갈라졌다.

어떤 수업시간에는 무서운 선생님이 딱 버티고 있음으로 꼼작 못하고 수업을 해야 

하는 경우와 또 한 경우는 좀 물렁한 선생님의 시간에는 학생들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었었다.

 

 

실습시간은 주로 농장에서 이루어졌다.

우리의 실습농장은 온실, 채소포, 과수원이었다.

각 포장마다 특성이 다 다르게 나타난다.

겨울철 실습은 온실이 최고였다.

따뜻한 온실에서 하라는 농작업은 안하고 서로 떠들고 장난하는 게 다반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도 많았다.

선생님을 골려 주려고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 위주로 행동하다보니 

자연스러웠던 현상인지도 모른다.

채소포나 과수원 실습에서는 생산물이 나오는 관계로 그 때는 더더욱 많은 

에피소드가 나왔다.

지금도 우리 동기들이 모이면 옛날 채소포나 과수원에서 생산물을 몰래 따 

먹다 걸려서 엉덩이에서 불이 나도록 빠따를 맞았던 이야기를 하곤 한다.

 

 

 

 

사회생활도 멀리 못가고 이 지역에서 말아냈다.

열정과 패기를 무기로 자신의 사업 영역도 넓혀 나갔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전공을 바탕으로 직업도 그 전공과 딱 맞은 분야에서 지금까지 

일을 해 왔다.

기초가 탄탄한 가운데서 만들어진 사업체를 지금까지 잘 굴리면서 살아온 것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의 주특기인 기타를 가지고 내공을 쌓아 나갔다.

꾸준한 노력의 결과 기타 계에서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와 함께 음악에 대한 열정도 만만찮이 컸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이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노화에서 견딜 만 한 사람은 없다고 본다.

일류 메이커에서 튼튼하게 만든 자동차도 연식이 지나면 빌빌하다가 폐차의 

수순으로 가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하물며 인간은 오죽하겠는가.

육체를 60여 년간 사용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망가지게끔 돼 있는 법이다.

혹시나 부모가 좋은 유전자를 물려주었다면 좀 덜 아프게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탄탄하던 나의 친구 준배를 떠나보내고 나니 마음이

 많이 허전하다.

모든 것이 남의 이야기라 아니라 나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는 것이다.

생기 팔팔하던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지금까지 살아온 역사도 길다면 길지만 

너무 빨리 이승을 하직한 것 같다.

입에 밥숟가락 좀 떠 넣을 만 하면 오장육부가 망가져 아무 꼴도 안 되는 형국이 된다.

거친 삶의 역정에서 조금 벗어나 발 벗고 잘 만 하면 저승문이 보이는 법인가 보다.

 

 

좀 더 새롭고 흥미로운 세상을 같이 했으면 더 좋았을 터인데 먼저 가 버린 친구가

 안쓰럽기만 하다.

저승이 있다면 이승에서 못다한 일을 거기서 멋있게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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