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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끈적한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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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8-09-26 08:50 댓글 0건 조회 56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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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끈적끈적한 인간관계

 

어제 모 초등학교에서 그 학교 출신 동문들의 체육대회가 열렸다.

계절도 좋고 날씨 또한 더 좋았던 하루였다.

그 학교를 졸업한 많은 동문들이 모여서 만남의 공간도 마련하고 운동 도 하는 등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일 년에 한 번 만이라도 선후배를 만나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였으리라 본다.

동문체육대회라 함은 동문 상호간에 친목과 안위 그리고 과거의 추억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었다고 본다.

객지에 나가 있던 사람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많은 동문을 만날 수 없으리라 본다.

만나서 반갑고 그 반가움에 소주 까지 한 잔 주고받을 수 있다면 더 좋은 자리가 아닐까 생각하면 이 또한 가슴 설레는 행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사에서 열 일을 제쳐놓고 모교 운동장으로 모이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인간 사회학적인 이론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뭔가 끌리는 매력이 있어서일 것이다.

결국 연줄의 개념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엮어질 수 있는 연줄을 크게 혈연, 학연, 지연으로 분류를 하고 거기에 맞추어 사회생활을 했었거나 하고 있다고 본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혈연을 엄청 중요시 했다고 본다.

혈연을 떠나서는 관혼상제 등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을 처리할 방도가 마땅치 않았다.

지금이야 혈연이 희석되어도 돈만 있으면 관혼상제쯤은 쉽게 풀어갈 수 있었지만 과거에는 그런 세상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집안에서 내 놓은 자식은 어디 가도 대접을 받을 수 없었던 만큼 죽으나 사나 혈연에 얽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피로서 엮인 집단의 결속력이라 던가 소속감은 그 무엇 보다 크리라는 것은 누구나 인식하리라 본다.

 

다음으로 지연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지연에 가장 최소 단위는 마을 일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대소사는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많이 있었다고 본다.

하다못해 우물에서 물을 길러 먹더라도 마을에 인심을 잃으면 그 조차 힘들었던 시대였다고 본다.

끈끈한 관계를 맺지 마라해도 알아서 엮여야 할 처지였던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파트 같은 초 밀집 마을 단위에서도 앞집에 누가 사는지 큰 관심이 없는 시대로 들어 온 것이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외쳤던 것이 학연이다.

우리나라에 학연은 마을 같이 좁은 단위가 아니라 거의 전국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학의 경우, 전국에서 모여드는 만큼 거기에서 동문수학을 한 사람들이 세력을 가지는 순간에 학연이 꿈틀거리게 된다.

물론 지방에 있는 학교도 큰 틀에서는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본다.

시골에 조그만 초등학교 출신도 그들이 모이면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힘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다면 서로가 인연의 폭을 확대하여 세력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과거 어느 시절에는 학연도 훌륭한 스펙이자 능력단위로 각광을 받았던 시절도 있었으나 세상이 변하면서 조금은 희석된 듯 한 느낌도 들어간다.

 

엊그제 시골학교 동문체육대회에서는 혈연, 학연, 지연이 총 집합된 가운데서 이루어진 종합 인연 체육대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골초등학교인지라 형제자매 모두가 그 학교를 나왔으면 지엮 또한 그 범주 내에서 이루어진 것임으로 지연 집합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이 특정학교를 오면서 자연스럽게 학연으로 발전시킨 사례라 본다.

 

그 체육대회에서 선출직의 관료들이 많이 참석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표 관리 차원에서 또 어떤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또 어떤 사람들은 지역에 애로사항을 해소하여 주기 위해서 등으로 참석하였다.

그 또한 인연으로 참석하였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단상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 간에 인연을 헤아려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학교를 달리 했지만 같은 동지적 개념으로 나란히 앉아 있는 경우도 보인다.

 

학연이 우선인가, 정치적 동지가 먼저인가 등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학연이 우선이라면 같은 학교 출신들을 자기 사람으로 천거하고 키웠을 터인데 그런 모습도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뜻(정치적 색체)을 같이 하는 사람이 더 끈끈한 인간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간다.

인연의 스펙트럼이 점점 확대되면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세계와 맞는 사람들이 모이는 형국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학연이 힘을 발휘하던 시대도 점점 저물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간다.

지금도 어떤 특정 학교에서는 학연을 바탕으로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등을 리드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다원화되어 가는 사회에서는 그것도 한계에 부딪힐 날도 머지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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