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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 길을 묻다 180 - 『벽두劈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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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21-01-08 12:59 댓글 0건 조회 76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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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긴 잠에서 깨어 그대를 만나러 가리라

설레이는 가슴일랑 지그시 누른 채

동백꽃 닮은 선홍빛 마음으로

그대를 만나러 가리라  

 

새해에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일구리라

서툰 쟁기질일망정 묵은 잡초를 걷어내고

씨줄로 날줄로 이랑 만들어 씨 뿌린 후

옛 농부의 마음으로 가꾸고 거두리라   

 

새해에는 가끔씩 잊어버렸던 나를 찾아 길을 떠나리라

삼신할미가 점지한 제 모양과 제 색깔과 제 목소리 제 표정으로

제 복만큼만 어깨에 걸머지고

소를 닮아 뚜벅 뚜벅 제 할일 하고 제 갈 길을 가는

나를 만나러 길을 떠나리라   

 

치열하게 살아왔던 날의 집착과 격정을 내려놓고

팽팽하게 잡았던 삶의 고삐를 느슨하게 잡은

온유溫柔함이 나를 지배하게 하리라 

나와 그대의 삶을 비교하지 않으며

비록 작을지라도 가진 것 나누며

투박한 질그릇 같은 소박함이 힘이 되는 날들이 되리라. 


그리하여 옷깃 다시 여미고 그대를 만나면

연필로 꾹 꾹 눌러 쓴 마음으로부터의 평화를 꺼내어

오롯이 전해주리라

   

산수유 가지마다 서설瑞雪이 덮히는

새해벽두劈頭  

비워진 마음으로 새길 위에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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