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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문화예술

길 위에서 길을 묻다 182 - 꽁지머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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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21-02-08 09:07 댓글 4건 조회 76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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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머리칼이 웬만큼 자란 최근 문제가 생겼다. 길기는 했으나 묶기에도 애매한 어중간한 머리카락이 끝이 끊임없이 귓등과 목덜미를 간질이는 것이었다. 잠을 잘 때도 마찬가지여서 눌린 머리칼은 영락없이 뒷덜미를 괴롭히고 게다가 약간 곱슬인 머리칼은 하루라도 감고 손질을 하지 않으면 제멋대로 헝크러져 보기가 여간 흉하지 않다. 머리를 감은 후 말리는 일도 번거롭기는 마찬가지여서 지극한 인내심은 물론 여간 부지런하지 않고는 꽁지머리를 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유신시절,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장발족의 대열에 합류를 했었다. 장발은 젊은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요 시대상황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으니 곳곳에 배치된 경찰들과 숨바꼭질을 했음은 물론이었다. 쫒는 자는 국가관(?)이 투철했거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충성을 다하느라 집요했으며, 쫒기는 자는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를 억압당하면서도 비겁해야 했다. 장발, 그까짓 게 무슨 대수라고 골목길에서 쫒고 쫒기며 청춘을 보냈는지 지금 와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웃픈 해프닝이었다.

속절없이 세월은 흐르고 이제는 기르든 말든 그 누구도 간섭하지도 관심도 주지 않는 반백이 다된 머리칼을 가지고 꽁지머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에 빠진 자신이 우습다. 그 시절, 이빨 빠진 바리캉에 반은 깎이고 반은 뜯겨 눈물을 질금거려야 했던 유년의 시골마을 이발소 거울위에는 찍어낸 듯 유화로 그린 유럽풍 그림위에 러시아의 대 문호 푸쉬킨의 시가 쓰인 액자가 걸려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한없이 슬픈 것

모든 것은 지나가고

지나가 버린 것은 그리움 되리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한 추억이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반드시 기쁨의 날 다시 오리니 
 

코로나19로 외롭고 절망하고 슬퍼지는 요즈음에 새삼 마음에 위안을 주는 시다. 그리고 싯귀처럼 반드시 기쁨의 날 오리니꽁지머리는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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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전님의 댓글

조규전 작성일

옛날 이발소에 걸려있던 액자의 문구가 지금 이 시대에도 생생하게 통용되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애매모호한 판단을 요구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되곤 합니다.
저는 개인생각으로 프로패셔널한 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머리카락이 짧을 수록 좋고(스님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노스텔지어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길어도 괜찮다고 봅니다.
어중충한 단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한달에 한 번 정도 사방공사(?)를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구한말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내 목이 달아날 지언정 상투의 머리카락은 못 자르겠다."라는 투철한 신념을 가졌던 시대를 비교하면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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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머리칼과 관련해 참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요.
아이들 머리단속도 꽤  했을 듯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시길요. 읽을 수록 名句입니다.
지나놓고 보면 다 소중한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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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욱빈님의 댓글

임욱빈 작성일

허허허!!!!
에이포 영감님!
늘그막한 나이에 한 결심이 하후 아침에 무너지는 모습  안타깝구려!

테레비전에 음악 내지는 예술인이 아니라도 꽁짓 머리하는 사람이 농촌에도
있던데....... 소생은 멋 있어 보이던데.....
그렇거나 우찌댓던 '노하거나 슬퍼하지 압시다'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니까.
그 아름다움이 60이 넘어서부터라고 대다수가 말은 합디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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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포님의 댓글의 댓글

에이포 작성일

꽁지머리는 나보다 임작가님에게 더 잘 어울릴듯 하니
자유인이되거든 한번 고려해 보심이...ㅎㅎ
명절 알차게 보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