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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문화예술

길 위에서 길을 묻다 183 – 『치마와 빤스』 ② 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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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21-03-12 09:41 댓글 2건 조회 7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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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 쓰                         
                     임 보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도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이 시는 문정희 시인의 치마에 대한 시인 임보의 답시(答詩)로 원래 제목이 없다. ‘치마와 형평을 맞추기 위해 필자가 이 시의 말미에 있는 우리에게 익숙한 빤쓰(팬티)’를 옮겨 함부로 제목으로 붙였다. 

이 시에서 보듯 시인 임보가 문정희의 시상을 간파하고 남자의 을 상대적 해학적으로 풀어 낸 재치는 읽는 이로 하여금 찬탄을 금하지 못하게 한다. 은밀하게 전해 내려오는 밀교의 경전처럼 은유적이고 내밀했던 , 사랑이 진실하다면 은 더러 솔직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양지녘의 수선화가 봄바람에 춤을 추고 곧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을 수 있는 하얀 목련꽃 그늘도 펼쳐질 것이다. 

봄은 도발의 계절이다. 충동과 유혹의 계절이며 생명의 계절이다. 신비의 바다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권하건데 신비의 성지를 곁에 두고 이 봄을 무효화 하지 말지어다. 

탱탱해진 팬티에 바람을 불어넣어 부표로 띄우고 깃발을 세워 밤마다 순교한들 누구 시비 붙을 이라도 있겠는가.    

성은 본능이고 순수며 생명의 열쇠이지 결코 희롱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차원 다르게 표현한 두 시인의 통섭이 아름답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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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yki님의 댓글

kimyki 작성일

욕정의 소멸로 비로소 자유로워진 육체와 더불어 무쇠 덩어리 같았던 번뇌를 벗어던진 해탈한 심령이
제법 성스럽고 거룩해 보이기도 한답니다.
性으로부터 벗어난 이 자유를 절망처럼 받아드리는 늙은이들을 보면 한녘은 가상하나 부럽진 않답니다.
은밀한 신과 신전은 여전히 지천인데 그 모든 것을 돌덩이로 바라보는 내 나이가 어찌 아니 거룩하지 않으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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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욱빈님의 댓글

임욱빈 작성일

우주의 근원!
생명의 원천을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내다니.........
'빤스'로 제목을 붙인 에이포님도........
'신과 신전은 지천인데.......돌덩이로 바라보는.......선배님의 해학적인 표현......
너무나 행복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