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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인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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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50 작성일 2023-08-31 21:05 댓글 0건 조회 4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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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인으로 돌아갑니다.

 

 

세상사 有始有終에 걸리지 않은 대상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 무엇이던 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이야깁니다.

그야말로 사회초년병으로 어리어리 하던 시절에 구한 직장이 바로 교직이었습니다.

교직으로 입성하게 된 사유까지 밝히자면 지면이 좀 더 길어 질 것 같은 생각도 들어

갑니다.

간단하게 연유를 살펴본다면 사범대학 계통을 나왔기에 이 길을 걷게 되었다고 봅니다.

 

 

나의 교직의 시작은 1984년도 가을학기였습니다.

교직에 입성하기 전에 이미 서울에서 다른 직장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해 여름에 모교 은사 선생님께서 발령이 날 가능성이 있으니까 준비하라는 것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다니고 있던 직장도 그런대로 밥 벌어먹을 정도는 되었는데 그걸 뒤로 하고 새 

직장으로 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염려도 되긴 되었습니다.

팔자가 바뀌려고 그랜지는 모르지만 현 직장을 그만두고 다음 직장인 교직으로 

이동하길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결과가 오늘에 이르게 된 시발점인 셈입니다.

 

 

교직 기간 중에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다른 직장에 비해서 안정적이라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남모를

 애환이 다 서려 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봉급이란 개념이 한 달 동안 골머리 썩힌 댓가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내가 어떤 집단이나 조직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 한 댓가가 아니라 엉뚱한 데서 온 

대가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교직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가르치는데 방점을 찍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수업 시간 만에 말로만 잘 때우면 되는데 그게 뭘 그리 어렵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겁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라 봅니다.

교직의 기본업무가 가르치는 것인 만큼 그것만 잘 되면 만사가 잘 되는데 왜 그리 

앓는 소리를 하냐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직에 들어와 보니 가르치는 역할만 해서는 꼬락서니가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때엔 가르치는 것을 뒤켠으로 두고 생활지도에 매달려야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학생들의 생활지도가 제대로 안되어 학교 사회가 어수선하면 교육 자체도 제대로 

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샛길로 가는 학생들을 위하여 얼래고 달래고, 겁도 주면서 이끌어 주었던 일을 밥

먹듯 하고 또 했었습니다.

 

 

수업은 또 어땐는가?

학습은 반복에서 이루어진다고 가르치고 또 가르쳐도 돌아서면 망각의 세계로 

빠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좌절감도 많이 느꼈습니다.

내 자신이 얼마나 시답잖게 가르쳤으면 저렇게 기억을 잘 못할까 하는 자괴감도

 늘 나와 같이 하였습니다.

쉽게 가르치려도 별별 예시를 다 들어서 이야기해도 남 얘가 듣듯 반응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열불도 많이 받았습니다.

한때는 의욕이 넘쳐서 한자도 섞어서 가르쳤고, 시험문제도 한자를 넣어서

 출제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결국은 아이들만 힘들게 만들었다는 자책감마저 들어갑니다.

 

 

가르침의 왕도는 없는 법입니다.

나와 같이 호흡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그들이 추구하는 세상을 열어줄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요는 가르치는 자가 생각하는 세계와 배우는 자가 생각하는 세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 차이점을 어떻게 메꿀 것인가는 교사들이 고민해야 할 몫이 됩니다.

아무리 악을 쓰고 가르쳐도 배우는 아이들이 시큰둥하다면 교육적 효과는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가지고 가르치고 또 가르쳤지만 뾰족한 묘책은 찾기가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때인가부터 백묵을 놓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어렴풋하게 가르침이 무엇인지 눈뜨게 되었습니다.

철들자 노망이 들 듯, 백묵을 놓으면서 교육이 뭣인지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배우는 것에 대하여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좀 더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 왔는데 아직까지 해답은 잘 보이질 않았습니다.

수많은 교육학자들이 지금까지 많은 연구를 해 왔지만 그들 또한 딱 부러지게 

이게 진정한 교육이다.”라고 정의한 학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나 놓고 나니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것은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아이, 젊은이, 장년, 늙은이, 죽은 자까지도 헤아리고 있는 것이 바로 시간이 

가지는 속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30수년이란 시간을 교직에 있으면서 애로사항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직무의 소홀이라 볼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만 그렇게 살았으면 그런 비난을 겸허하게 감수하겠지만 주변인의 

대부분도 그럭저럭 살아갔다는 것을 보면서 일말의 위안은 느낍니다.

더불어 책임회피가 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지나가면 다 아쉬운 법이라 봅니다.

지나는 순간은 그래도 최선의 선택이자 절묘한 신의 수라고 일컬으면서 판단하고

 행동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보면 될 것입니다.

많은 인간은 자기 것이 최고라는 아집에 사로잡혀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 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얼추 답이 나오리라 보여집니다.

딴엔 이 일이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하다고 인정되고 있기에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

 붓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쯤을 알고 저질러야 되는데 그 경지까지 간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게 정설인 것 같습니다.

거의 40년 정도 학교나 그와 비스름한 기관에서 인생을 보낸 셈입니다.

내 인생에서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이 중요한 시간대를 죄다 교직에 쏟아 부은 

인생을 산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았을 땐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 그 후일담을 몇 페이지의 

글로 다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용이한 일은 아니라 보여집니다.

그렇다고 머릿속에 남아있는 수많은 추억과 경험을 그냥 버릴 수 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막상 자판을 두들기며 나의 지난날 교직시절을 떠 올려 글로 만드는 게 쉽지는 

않은 것을 느낍니다.

40여년을 보내긴 보냈는데 글에 남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일이 무수히 떠오르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절실하면서 강도 높게 교직에 임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지난날의 일 자체가 

여기에 쓸 정도로 역가가 높은 일이 아니라 생각해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경력은 많았지만 글로 쓸 정도로 의미가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 밖에 안 

될 것같습니다.

교직에 몸 담았을 때 어떤 자세로 임하였는가를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자판을 두들깁니다.

기왕 어떤 일에 몸 담았으면 그 세계가 감동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데 그게 

제대로 안됐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나고 난 다음 그런 푸념을 해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현실이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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