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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길묻 - 불멸의 사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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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24-04-15 15:49 댓글 0건 조회 8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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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년 음력 55일 저녁, 평안도 암행어사 박내겸(1780~1842)이 민심을 살피기 위해 친구가 부사로 있는 성천 관아에 들렀다. 변복을 한 채 관아의 툇마루에 앉아 있자니 먼발치에서 박내겸을 바라보고 섰던 화장기 없는 젊은 기생이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제가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런대로 여러분을 모셨습니다. 그런데 손님은 결코 궁하게 여겨지는 상이 아니신데 어찌 행색이 이러하십니까? 이제부터는 뭇 사람들의 관상 볼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기생의 눈에 관상과 달리 초라한 행색이 아무래도 어색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박내겸이 농반진반 넌즈시 말을 건넸다.

 

그러한가? 지나간 일은 지나갔으니 그렇다고 하세만, 앞으로 좋은 시절이 온다면 오면 그때는 나를 귀하에 여겨준 자네에게도 호사를 안겨주고 싶네.”

 

박내겸은 모르는 척 말대꾸를 했지만 이미 내사를 통해 그녀의 명성을 아는지라 한눈에 그녀가 부용이라는 것을 알고 대답을 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박내겸은 대과에 급제한 후 박학다식함과 넘치는 재기로 승승장구하여 승정원과 사간원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지금으로 말하자면 세상 물정을 알 만큼 아는 중견 관료였다.

 

이 말에 부용이 특유의 새침한 얼굴로 대거리를 했다.

 

옛말에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여인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고 하였사옵니다. 손님께서는 저의 말을 가벼이 여기시는 듯하니 매우 서운합니다.”

 

그 말을 들은 박내겸은 일기에 이렇게 기록을 했다.

 

나는 그저 웃을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我是了笑, 没有回答)

 

부용은 일찍이 장안을 드나들며 귀한 집 자제들과 음운을 주고받아 명성이 자자했으니 그만큼 당대에 이미 널리 알려진 기생으로 당시의 많은 선비들이 부용을 일컬어 신이 내려준 당대의 천재(眞絶代神才)”라며 찬탄을 했다.

 

이후 박내겸과 부용은 서너번 정도 더 만나 시문을 주고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특히 마지막 만남은 부용이 박내겸을 지독하게 사랑했던 것일까? 성천에서 백여리 떨어진 중화까지 박내겸을 찾았던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부용이)홀연히 한밤에 찾아와 적벽부(赤壁賦/소동파가 유배지인 호북성 황주의 장강에 배를 띄우고 적벽에서 선유하면서 지은 시)를 낭송했다. 이 또한 신통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들의 만남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기록에 상세하게 나와 있지 않다. 어쩌면 기록으로 남길 수 없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하룻밤 로맨스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짝사랑이었거나 프라토닉 러브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감정은 미묘한 것이니 어찌 한 시대를 풍미한 재사들의 사랑을 함부로 평가할 일인가. 다만 부러워 할 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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